[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베트남 진출 정해성의 배움과 가르침

입력 2017-11-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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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 감독. 사진제공|HAGL

지난달 베트남 프로축구 명문클럽 호앙아인잘라이(HAGL)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해성(59) 감독은 “축구는 어디든 마찬가지 아니겠나. 낯선 환경이지만 잘 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다시 연락을 했다. 목소리는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베트남이 체질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물갈이 때문에 심하게 앓기도 했지만 이젠 순조롭게 적응 중이라고 했다. 평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인데, “베트남이 체질”이라며 여유를 보인 건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계약 당시 베트남에 한국축구의 성장 노하우를 전하는 첨병역할을 자임했다. HAGL은 2002년 월드컵 4강의 히딩크 사단, 2010년 월드컵 16강의 허정무 사단에서 코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정 감독의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뛰어난 지략에 높은 점수를 주고 영입했다.

정해성 감독. 사진제공|디제이 매니지먼트


구단의 대우는 극진했다. 역할도 그냥 감독이 아니다. 테크니컬 디렉터다.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소년축구 전반을 관장하는 총 책임자다. 그런 그가 베트남에 도착한 뒤 몇 번이나 놀랐다고 했다. 가르치기 위해 온 곳에서 오히려 배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첫 번째가 구단주의 축구철학이다. HAGL 구단주는 응우옌 둑 회장인데,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쌓은 인물로 전해진다. 정 감독은 “처음 만난 식사자리에서 느낌이 팍 왔다”고 했다. 정 감독에 따르면, 구단주는 “정 감독이 우리 팀을 찾은 게 아니라, 우리가 정 감독을 찾아서 모셔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며 절대 서두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천천히 지도하면서 HAGL을 프로다운 프로팀으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비전을 가진 구단운영 철학에 정 감독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는 성적이 우선이다. 대개 결과를 내려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다. 그런데 성적보다는 천천히 하면서 제대로 된 팀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정 감독의 마음이 크게 움직인 것이다.

구단운영 목적이 국가대표팀의 전력강화에 있다는 구단주의 얘기도 깊은 인상을 줬다. 프로팀의 존재이유가 국가대표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를 키워내는 것이라고 구단주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유소년 육성에 눈을 돌렸다고 한다.

HAGL의 클럽하우스는 한국의 K리그 수준을 뛰어 넘는 시설을 자랑하는데,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기 위해 투자한 것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 협력해 선진시스템을 배우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강원FC에 진출한 베트남 국가대표선수 쯔엉이 대표적인 유스 출신이다. HAGL의 1군 선수단 평균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대부분이 유스팀에서 올라왔다.

정해성 감독. 사진제공|디제이 매니지먼트


정 감독은 “시스템을 만든다는 건 단기간의 성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된다. HAGL의 유망주들은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 10년 이상 함께 훈련해왔는데, 이제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V리그의 열기는 장난이 아니라고도 했다. 매 경기 관중석이 꽉 찰 정도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축구다.

축구장은 한국프로축구가 태동하던 1980년대를 연상시키며 다소 열악한 환경이지만 관중의 열기는 부럽기만 하다고 했다. 정 감독은 지난달 27일 V리그 데뷔전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4일 열린 사이공과의 원정경기에서도 승리하며 2연승으로 신바람을 냈다. 정 감독의 인기는 지금 상종가다.

넉넉한 웃음처럼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 나갔으면 한다. 히딩크가 한국에서 월드컵 신화를 썼듯, 베트남에서 ‘정해성 신화’를 썼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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