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GM을 만나다] SK 염경엽 단장, “시스템의 핵심은 코치 육성”

입력 2018-01-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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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6시즌 넥센 감독을 지낸 염경엽 SK 단장의 철학은 확고하다. 처음 단장직을 수행한 2017시즌을 통해 여러 성과를 내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감독 시절 코치들에게 유독 엄격했던 그의 스타일은 단장이 된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스템의 핵심은 코치 육성”이라는 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GM(General Manager·단장) 야구’ 시대다. 한국프로야구도 시간이 흐를수록 메이저리그처럼 현장보다는 프런트 쪽으로 점차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프런트의 중심은 단연 단장이다. 스포츠동아는 오프시즌을 맞아 프로야구 10개 구단 단장들을 차례로 만나 구단의 당면과제와 장기비전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SK 와이번스는 시스템야구를 지향한다. 그 시스템의 실체가 그동안 모호했다. 한동안 SK는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스템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 SK는 슬로건이 아닌, 콘텐츠로서의 시스템을 깔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바깥에 말할 수 있을 때가 왔다. 전파할 적임자도 찾았다. 시스템의 총 설계자라 할 SK 염경엽 단장(50)이다.

성공한 감독에서 프런트 수장인 단장(GM)으로 분야를 전환한지, 이제 갓 한 시즌을 넘겼다. 그동안 염 단장은 의도적으로 인터뷰를 피했다. 스포츠동아의 ‘GM을 만나다’가 10개구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16일 인천 SK 단장실에서 만난 염 단장은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다. 특유의 나긋나긋한 어조는 여전했지만 어법은 단장이 된 이래 가장 확고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선명했다. 방향성을 정한 자신감이 서 있다는 근거로 들렸다. 비로소 염 단장이, SK가 영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시스템야구의 철학과 매뉴얼의 틀을 정립했다는 뜻에 가깝다.

SK 염경엽 단장.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열정 공유하는 인재 키워 ‘SK Way’ 만들고 싶다”

-현장을 떠나 프런트로서 1년을 지냈다.

“1년을 돌이켜보면 준비가 부족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더 좋은 성적을 냈어야 했다. 힐만 감독을 돕기 위한 준비를 더 잘했어야했는데 미흡했다. 그 때문에 SK의 2017시즌 레이스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채워야 될 부분에 집중했다. 외국인투수 산체스를 영입했다. 프리에이전트(FA) 정의윤도 필요한 선수라 판단해 잡았다. 마무리훈련에서 코치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선수들과 노력하는 모습도 봤다.”


-경험 해보니 프런트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같던가?

“SK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선수 육성만이 아니다. 코치 육성이 그 전제다. 구단주님, 사장님도 방향성을 이해하신다. 좋은 코치가 좋은 선수를 만든다. 감독을 하면서 깨달은 경험이다. 구단이 코치를 육성하고 그 코치가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 그것이 제대로 된 운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코치들이 가치를 올려서 KBO리그에서 인정받고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으면 좋겠다. SK는 사람을 계속 키울 것이다. 그런 코치들의 열정과 노력이 선수에게도 전파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팀이 빠른 시간에 궤도에 진입할 것이다. 프런트는 하고자 하는 동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1년이 흘렀다. 시스템의 궤도진입은 순조롭나?

“(SK 내부에서만 공유하는) 매뉴얼북(book)을 계속 업데이트 할 것이다. SK의 야구란 무엇일까. 선수들이 하는 야구도 있겠지만 프런트의 색깔을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색깔인가?

“SK의 틀을 벗어나 KBO리그를 선도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 미국은 세계적 선수를 데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본도 고교, 대학 자원이 풍족하다. 우리는 그들과 토대 자체가 다르다. 우리의 육성 방법은 달라야 된다고 본다. 우리가 천재가 아닌 이상, 백지에서 만들 수는 없다. 여러 케이스를 접하고, 아이디어를 선별해서 SK만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 매뉴얼의 모방이 아니라 (한국 실정에 적합한) SK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싶다.”

SK 염경엽 단장.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미래 SK 리더의 덕목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업무 협약은 잘 되고 있나?

“시카고 컵스와 추진 중이다. 코치, 프런트 연수가 이뤄질 수 있다. SK가 가지고 있지 않는 스카우트 평가 자료도 공유할 수 있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SK 야구는 데이터를 무시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무궁무진한데 미국에 필요한 자료가 있고, 한국 실정에 맞는 자료가 있을 것이다. KBO리그 경기에 활용하고 트레이드나 FA 영입 때, 어떤 데이터에 가중치를 둘지 집중하겠다.”


-야구인들은 통계 분석에 비판적인 편이다.

“나는 감독 때부터 50:50으로 활용했다. 50%는 통계, 50%는 그날의 컨디션, 흐름, 촉이었다. 통계가 절대적이라면 빌리 빈(영화 ‘머니볼’의 실제 모델)이 늘 우승해야 된다(웃음). 얼마나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느냐를 간과할 수 없다. 특히 KBO리그는 감독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가 커진다. 물론 감독의 WAR가 숫자로 잡히진 않는다. 미국, 일본야구에 비해 한국에서 감독이 더 중요한 핵심 포인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감독의 통계 이해도가 떨어지면 실전에서 거의 무용지물이다.

“SK는 이제 그런 감독 안 뽑는다. 그동안 우리 야구팀들이 감독을 어떻게 뽑았나?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끝이었다. SK는 이렇게 안 하겠다. ‘SK 야구는 기본 틀이 이겁니다. 선수를 어떻게 키우고, 야구는 이렇게 할 것인데, 이 틀 안에서 감독님의 야구를 접목시켜 펼쳐주세요’가 전제다.”


-내부승격이 많이 될 것 같다.

“우선적으로 그럴 것이다. 선수 때부터 감독감인 선수를 교육, 경쟁시킨다. 그 안에서 특별한 인재를 고르겠다. 한 명이 아니라 후보군을 만들 것이다. 지금 우리 코치들은 리더십 강의를 듣는다. 커뮤니케이션도 학습한다. 왜? 안 해 봤으니까. 이제 ‘막연히’로는 SK 감독이 될 수 없다.”


-흡수력, 열린 마인드가 중요할 듯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why)’다. 질문해야 된다. ‘왜’만 되면 들을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다. 왜 이걸 해야 되는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뭔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래야 어떤 코치가 되고 싶은지, 그걸 알아야 SK에서, KBO리그에서 도움이 될 지도자가 된다. SK만 시야에 넣지 말라는 얘기다. 단장으로서 코치와 미팅을 자주 한다. 내 경험을 알려주고, 코치들이 처음부터 방향을 잡기 힘드니 도움을 주려 한다.”

SK 염경엽 단장.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학습과 소통을 통한 조직문화 혁신

-효율성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다같이 잘할 수 있다. 이제 SK 코치들이 프리젠테이션(PT)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웃음). 힘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발전을 위해서다. 30분 PT를 하려면 자기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가능하다.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PT를 보면 어떻게, 얼마나 준비했는지가 보인다. 이는 곧 그 사람의 야구를 향한 열정이다. 2017시즌이 끝나자마자 마무리훈련 가기 전에 프런트와 코치 스태프 미팅을 1박2일로 밤 10시까지 했다. 열띤 토론과 질문이 보기 좋았다. 그 과정에서 지식이 공유되고, 방향이 같아진다. 1군과 2군의 통일감이 발생한다. 준비가 되어있는 마무리훈련이 됐다. 계획을 짜서 실행을 했다는 것, 그 자체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됐다. 따라준 코치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멘탈 교육도 중시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성공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효율적 방편이다. (넥센) 서건창은 송구가 안 되던 선수였다. 그 약점 때문에 쫓겨난 선수였다. 그러나 넥센 감독을 할 때 서건창에게 치는 것,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잘하는 것으로 못하는 것을 커버시켰다. 그 자신감이 수비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서건창이 수비까지 인정받지 않나. 장점이 부각되면 단점은 사라진다.”


-야구인이 아니라 단장으로서 선수몸값 폭등을 어떻게 보는가?

“몸값은 성적과 비례한다. 연봉은 올라가는데 팀 성적이 바닥이면 운영을 잘 못하는 것이다. SK도 비효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돈을 안 쓰겠다가 아니라 가치 있게 쓰자가 내 방식이다. 아껴서 성적 안 나면 누가 잘리나?(웃음) 아낀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윗사람도 설득하고, 책임도 지겠다. 그것이 단장의 할 일이다. 내가, 우리 구성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투자할 것이다.”


-명문구단은 꾸준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2018시즌 SK도 가능할까?

“힐만 감독에게 기대한다(웃음). 이 이상 현장에 관해 말하면 오만하게 들릴 수 있다.”


● SK 염경엽 단장

▲1968년생
▲광주제일고∼고려대
▲태평양(1991년∼1995년)-현대(1996년∼2001년4월·이상 선수)-현대 운영팀 과장(2001년4월∼2006년11월)-현대 수비코치(2006년11월∼2008년1월)-LG 스카우트(2008년2월∼2008년9월)-LG 운영팀장(2008년10월∼2009년9월)-LG 수비코치(2009년10월∼2011년11월)-넥센 작전·주루코치(2011년12월∼2012년10월)-넥센 감독(2012년10월∼2016년10월)-SK 단장(2017년1월)

인천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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