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허윤자 “김주성 선수와 비교 자체가 영광이죠”

입력 2018-01-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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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농구 20년의 역사를 모두 지켜본 레전드 허윤자. 남자 프로농구의 동갑내기 김주성의 멋진 은퇴선언과 은퇴투어를 보면서 마냥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그도 이제 정든 코트를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사진제공 ㅣ WKBL

■ ‘WKBL의 역사’ 삼성생명 허윤자

8게임 더 뛰면 현역 6번째 500경기 출장
“구단은 반대하지만 올 시즌 끝으로 은퇴
벌써 20년…팀 우승·농구 붐 일어났으면”


용인 삼성생명 허윤자(39·183cm)는 여자프로농구의 20년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산증인이다. 출범 첫 해였던 1998년 부천 신세계에 신인으로 입단한 이후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코트를 누비며 영광과 좌절의 세월을 함께 했다. 어느덧 현역 유니폼을 입고 뛴 시간만 20년.

자연스럽게 ‘맏언니’라는 칭호가 따라붙은 베테랑에게도 이번 시즌만큼은 감회가 남다르다. 은퇴라는 단어가 자신 곁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한국나이로 올해 마흔에 접어든 허윤자는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 김주성(39·원주 DB)과 1979년생 동갑내기다. 친분도 없고 서로 가는 길도 다르지만, 현역생활 마지막 페이지를 써내려간다는 점에서 마음이 통하는 구석이 많다.

허윤자는 “사실 20년이라는 세월을 코트에서 보냈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인데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최근 들어 주위에서 김주성이라는 선수와 비교를 가끔 해주신다. ‘같은 나이인데 너는 은퇴 안하고 뭐하느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곤 한다. 나로서는 김주성이라는 선수와 비교된다는 그 자체가 영광이다. 김주성은 데뷔 이후 줄곧 한 팀에서 어마어마한 기록을 쌓은 전설이지만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에 불과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겸손한 설명과 달리 허윤자는 여자프로농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 통산 492경기에 출전 중인 허윤자는 앞으로 8게임만 더 뛰면 역대 6번째 500경기 출장 선수가 된다. 리바운드와 스틸 부문에서도 각각 2526개와 462개로 역대 7위와 9위를 달리고 있다. 수상경력도 조금 특별하다. 선수 최고의 영예인 MVP는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모범선수상과 기량발전상, 우수후보선수상 등 그간의 노력이 깃든 선물들을 두루 안았다.

삼성생명 허윤자. 사진제공|WKBL


사실 허윤자는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후신)을 대표하는 선수 가운데 하나였다. 신인시절부터 무려 15년을 몸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2014시즌 이후 친정팀과 인연이 끊기면서 삼성생명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허윤자는 “친정팀에 있을 때는 후배들이 나를 무척 어려워했다. 아무래도 한 팀에서 오래 뛰다보니 어린 동생들이 나를 조금 무서워했다. 그런데 삼성생명에 오니 후배들이 내게 짓궂은 장난도 걸어주면서 살갑게 대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팀에 적응하게 됐다. 그러한 부분이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조카뻘 어린 선수들과 함께 숙소에서 생활하고 코트에서 땀 흘리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운동한다. 그만큼 허윤자에게 농구는 매력적인 운동이었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도 이제 이런 선수생활을 끝내려고 한다.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선 솔직한 심경도 밝혔다. 허윤자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려고 한다. 아직 구단으로부터 ‘승낙’을 받지 못해 이야기 중이지만 마음은 어느 정도 정한 상태”라고 고백했다. 보통의 경우 구단이 나이든 선수의 은퇴를 종용하고 선수는 현역 연장을 바라지만, 허윤자는 반대다.

구단이 오히려 선수생활 연장을 권유하고 있다. 최선참을 배려하는 구단과 관계자들이 그저 고마운 이유다. 마음속으로 정한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바라는 허윤자의 마지막 소망은 딱 두 가지다.

현역 피날레를 장식할 우승과 WKBL의 인기 부활이다. 허윤자는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다만 멋지게 우승을 차지하고 은퇴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지도자 허윤자’가 아닌 ‘일반인 허윤자’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웃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 싫지만 최근 WKBL의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하다. 다른 종목에도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초창기에는 넓은 팬층을 자랑하는 선배들 덕분에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뛸 수 있었다. 그때처럼 여자농구 붐이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 허윤자는?


▲생년월일=1979년 4월 19일

▲신체조건=키 183㎝·몸무게 73㎏

▲출신교=선일초~선일여중~선일여고

▲소속팀=삼성생명

▲프로데뷔=1998년 신세계 입단

▲프로경력=신세계(1998~2012년)~KEB하나은행(2012~2014년)~삼성생명(2014년~현재)

▲수상경력=2004년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모범선수상, 2009년 여자프로농구 기량발전상, 2011년 여자프로농구 우수후보선수상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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