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 박건형 “운명같은 볼링…스핀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요”

입력 2018-02-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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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건형에게 볼링은 새로운 경험이다. 볼링 이외에도 야구, 축구, 골프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그는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사진제공 | 지킴엔터테인먼트

‘마이 볼’ 구입 이후 공 휘는 모습에 매료
에버리지 160점대…아직 갈 길이 멀어요
운동도 공연도 떠난 공은 되돌릴 수 없어
되돌아봐도 가족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죠

배우 박건형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야구부터 축구, 농구, 등산, 골프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다. 최근엔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는 그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 운동이 있다. 볼링이다.

배우 박건형. 사진제공 | 지킴엔터테인먼트



● 볼링, 이거 운명인가?

여러 동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나같이 “함께 볼링을 쳐보자”고들 했다. 전화는 따로 왔지만, 재미있게도 모두가 한 팀이었다. 그렇게 박건형은 연예인 볼링팀 ‘플레이 보울’의 일원이 됐다. 너무 간단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볼링장에 가본 횟수를 불과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었다.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이들과 재미삼아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여러 동료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은 것이다. 모두가 볼링을 함께 즐길 ‘동지’로 박건형을 떠올렸단다. 그는 ‘이 정도면 (볼링을 쳐야할) 운명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이내 제 손에 꼭 맞는 ‘마이 볼’이 마음을 빼앗았다. 저 멀리 꼿꼿하게 서있는 핀의 부근에서 공이 날렵하게 휘는 것을 경험하면서부터다. 실력자들만 구사할 수 있다는 ‘스핀’이다. 박건형은 “그동안 일직선으로 가는 하우스 볼만 던지다가 마이 볼이 레인 마지막에 가서 휘는 걸 목격하는 순간 나에게 소질이 있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마이 볼 안에는 핵이 들어 있다. 공이 굴러가면서 핵이 있는 쪽으로 무게가 쏠려서 자연적으로 휘게 된다더라. 나는 내가 잘 해서 휘는 줄 알았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그의 실력은 이미 평균 이상이다. 인생 경기는 226점. 평균 160점대의 점수를 낸다. 목표는 180점이다. 박건형은 “볼링을 잘 치는 사람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연습에 자주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쾌속 성장이다. 그는 “공연 연습, 육아 때문에 볼링을 치러가기 어렵다. 팀원들은 번개로 삼삼오오 모여서 볼링을 치러 가는데, 유부남이라 눈치가 많이 보인다. 단체 채팅 방에서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 혼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토로했다. 평소 남다른 승부욕을 자랑하는 그이기에 더욱 그랬다.

볼링장 레인 뒤편에서 한 손에 볼링 핀을 든 박건형이 미소 짓고 있다. 사진제공 | 지킴엔터테인먼트



● 내 인생,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박건형이 인스타그램 소개 글에 적어 놓은 문구다. 이 짧은 문장은 그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 목 디스크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당시 뮤지컬 ‘헤드윅’과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병행하는 혹독한 일정에 몸이 견디질 못했다. 결국 오른손의 신경이 손상돼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헤드윅’에선 중도 하차해야 했다.

마음의 상처는 더했다. “신체의 한 부분을 못 움직이게 되니까 내가 아무 것도 아니더라. 그 몸으로 내가 어떤 작품을 할 수 있겠나. 스스로가 작아진 것을 느꼈다. 점점 사람들도 만나기 싫어지고, 동정 받는 것도 싫었다. 결혼식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헤드윅도 끝까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비참했다. 다시는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내 온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순간 정말 두렵더라. 이후 재활을 하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지금 주어진 이 모든 시간이 감사하다.”

운동과 공연 모두 마찬가지다. 한 번 떠난 공은 되돌릴 수 없고, 오늘의 공연은 오늘로 끝이 난다. 박건형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새로운 것들은 딱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다. 내가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도 무대에서 잘했든 못했든 다시 그 공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한다. 시간이 지난 뒤 찾아오는 아쉬움이 싫어서다. 그는 “내가 그때 조금만 더 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것이 싫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박건형은 ‘지금’을 산다.

배우 박건형. 사진제공 | 지킴엔터테인먼트



● 나의 또 다른 이유

최근 박건형은 뮤지컬 ‘모래시계’를 통해 검사 ‘우석’으로 지내고 있다.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우석은 결국 사랑하는 친구들에게까지 정의의 칼을 휘두르게 되는 인물이다. 다시 박건형의 삶으로 돌아오면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 된다. 일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먼저다. 그는 “내가 지켜야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도 커졌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마음도 커졌다. 아이와 있을 때는 함께 책을 읽고, 피아노도 치면서 한 번이라도 눈을 더 많이 맞추려 한다”고 했다.

형 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다. 때문에 공연이 없는 날엔 아들 이준이와 시간을 많이 보낸다. 덕분에 최근엔 아들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나이가 들면 아버지와 어색해지잖아. 그런데 어렸을 때 느끼는 아이와의 가까운 관계가 커서도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체, 정신적으로 같이 나눌 수 있는 아빠와 아들이 되고 싶다. 어쩌면 아이가 커서 같이 할 수 있는 운동들을 미리 배워두는 게 아닌가 싶다. 체력적으로도 키워놔야 나중에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박건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우석’에서 그를 찾아봤다. 스스로도 ‘모래시계’ 최고의 넘버로 꼽는 ‘검사의 기도’ 마지막 구절에서다.

“먼 훗날 내가 걸어왔던 길들이 후회되지 않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당당하기를….”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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