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되살려야할 한국축구의 색깔 ‘압박’

입력 2018-05-3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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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축구를 체계화시킨 이탈리아 출신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압박축구는 육체 뿐 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압박축구가 대중화된 건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다. 3-5-2시스템의 수비축구가 주류로 자리매김한 대회였다. 수비수의 백태클은 다반사였다. 그 탓에 공격수는 골문 근처에서 꼼짝을 못했다. 경기당 2.21골로 역대 월드컵 중 최악의 골 가뭄이었다.


이 대회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은 파울규정 강화, 시간지연행위 규제, 오프사이드 규제 완화, 승점제 변화 등 골 가뭄을 해소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FIFA 입장에서는 보는 재미를 위해 공격축구가 필요했다.


압박축구를 무력화시킨 팀은 브라질이다. 삼바군단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공격적인 4-4-2로 정상에 올랐다. 양쪽 윙백의 기습적인 오버래핑이 압권이었다. 또 일자 수비 대형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오프사이드 함정에 빠뜨린 작전도 볼만했다.


이처럼 월드컵 무대는 서로 물고 물리는 전술의 각축장이다. 공격이 득세하면 그걸 막기 위한 수비전술이 나오고, 수비가 깐깐하면 그 벽을 깰 공격전술이 등장한다. 이게 월드컵의 묘미다.


1930년대엔 공격지향적인 MM(2-3-2-3)이 유행했다. 1950년대엔 수비를 강조한 WM(3-2-2-3)이 득세했다. 펠레를 앞세운 브라질은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공격지향의 4-2-4를 들고 나와 1970년 멕시코월드컵까지 3차례 정상에 올랐다. 1974년 서독월드컵에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를 선보인 네덜란드가 돋보였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선 수비를 뚫고 들어오는 볼을 빗자루로 쓸 듯 걷어낸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가 각광 받았다.


이런 먹이사슬 속에서 압박축구는 1990년부터 대세로 자리 잡았다. 압박축구를 체계화시킨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고 사키 감독은 “압박은 우리를 강하다고 느끼도록 하고, 상대는 스스로 약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치열한 전술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내가 압박축구를 직접 본 건 2002년 월드컵 때다. 거스 히딩크 감독 덕분이다. 훈련 중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압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이끈 히딩크는 당시에도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압박으로 재미를 봤다. 상대를 막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인 압박은 세계적인 흐름이었지만 우리 선수들에겐 생소했다. 그 흐름을 이해 못하면 월드컵 사상 첫 1승이나 16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히딩크는 상대에게 볼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강력한 압박을 주문했다. 최전방 공격수도 예외가 없었다. 한명이 아니라 2~3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조직적인 마크였다. 또 수비와 공격라인의 간격을 콤팩트하게 하고, 항상 간격 유지를 강조했다. 상대 선수는 물론이고 패스의 길도 철저히 차단했다. 압박으로 볼을 빼앗으면 곧바로 역습이 가능했다.


이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 훈련이 필요했다. 체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압박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이 전술은 ‘약’과 ‘독’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동료의 빈 공간을 메워야하기 때문에 조직력도 중요하다.


피나는 훈련으로 압박축구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기적 같은 4강은 이렇게 탄생했다.


2002년 이후 지휘봉을 잡은 외국인 지도자들도 압박축구를 외쳤다. 하지만 그 때 그 맛은 나지 않았다. 여건이 달라진 탓이다. 더 이상 긴 시간 모여 함께 하는 훈련은 불가능했다. 또 선수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압박을 선호하지 않은 감독도 있었다. 한국축구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전술은 그렇게 흐릿해졌다.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과 온두라스의 평가전 경기가 열렸다. 한국 박주호가 수비를 펼치고 있다. 대구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내가 눈여겨본 건 승패가 아니라 압박의 완성도였다. 비록 온두라스의 전력이 본선에서 맞붙을 상대와 비교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색깔을 보여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우리 축구의 DNA를 찾은 듯 했다. 최전방부터 몰아치는 선수들의 근성을 보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시간적인 한계로 예전 수준의 압박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남은 기간 집중적인 단기 학습으로 완성도를 높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에게 맞는 옷을 입으면 그게 정답이다. 선수들이 편한 옷을 입도록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서 신태용 감독의 판단이 중요하다.


한국의 16강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예상이 많다. 우리는 남들보다 한발, 아니 열 발이라도 더 뛰어야 승산이 있다. 기왕 이런 상황이라면 압박에 커다란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우리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는데 압박이 최고의 카드라는 2002년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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