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개막특집 ③ KB손해보험 전력 분석

입력 2018-10-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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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은 프런트에서 현장으로 무게를 옮기는 체질 개선을 감행했다. 대형 FA 영입은 없었지만 코트에 오르는 6인 전원의 장점을 모아 승리로 연결하는 토탈 배구를 꿈꾸고 있다. 사진제공|KOVO

지난 시즌을 앞두고 KB손해보험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구단의 운영철학을 수정했다. 현장 책임자 감독에게 모든 권한을 준다고 선수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프런트 중심의 배구를 해왔던 구단으로서는 혁명과 같은 변화였다.

그 선언이 실제로 지켜졌는지는 선수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선수들은 승리수당이 이전보다 훨씬 빨리 입금된 것에서 구단행정의 변화를 실감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건 항상 이리저리 재는 일이 많아서 중요한 찬스를 자주 놓쳤던 구단이었지만 변화는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 처음 사령탑에 오른 권순찬 감독은 달라진 팀 문화와 구단의 정책을 상징하듯 김요한을 트레이드했다. 이경수와 함께 팀을 상징하던 에이스를 내보낼 정도로 선수단의 변화를 원했다. 결국 시즌을 4위로 마감했지만 에이스가 없어도 코트에 들어가는 6명이 마음만 잘 맞추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귀중한 시즌이었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사진제공|KOVO


● 기존의 멤버로 더욱 단단해져야 할 KB손해보험

이번 시즌 KB손해보험은 지난해 멤버구성에서 큰 변화가 없다. “리베로와 세터는 구단의 현금자산”이라는 권순찬 감독의 판단에 따라 정민수를 FA로 영입한 것이 전력보강의 전부다. 권 감독이 꼽은 팀의 문제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약하고 리시브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몇 년 째 약점이었고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팀의 전력이 들쑥날쑥한 것도 지난 시즌 기대이상의 선전을 하고도 봄배구에 나가지 못한 원인을 제공했다.

3연승을 해본 것이 단 두 차례일 정도로 꾸준하지 못했다. 20점 이후 마무리 상황에서 결정능력이 다른 팀보다 떨어져 이길 경기를 놓친 적도 많았다. 사흘 사이에 같은 팀을 상대로 어떤 날은 3-0으로 이기고 어떤 날은 0-3으로 지는 등 도깨비 같은 행보를 이어간 것도 문제였다.

권 감독은 해결방법으로 선수보강을 원했지만 현재 KOVO의 시스템에서는 선수보강이 어려웠다. FA시장에서 전광인을 탐냈지만 얘기도 꺼내기 전에 현대캐피탈에서 채갔다. 결국 기존의 날개공격수(황두연~손현종~이강원~강영준)를 믿어야 하고, 이들의 기량 업그레이드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권순찬 감독은 이런 판단에 따라 KOVO컵 때도 주전 선수들로 경기를 치렀다. 안정된 전력으로 결승전에 진출했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삼성화재에 참패하고 말았다. 큰 경기에서 드러난 선수들의 불안심리가 번지면서 속수무책의 상황이 벌어졌다. 모처럼의 우승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팀의 현실을 직면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 선수보다 더 위대한 팀을 위한 6명의 토탈배구

어찌됐건 팀의 고질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감독은 해결방법도 기술 이전에 정신에 있다고 진단했다. 권 감독이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 이유다. 멘탈이 약한 선수들에게는 비난보다 격려가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우리가 이겼을 때는 손현종과 황두연이 공격과 리시브에서 각자의 장점을 발휘한 경우였다. 질 때는 정반대였다. 결국 팀의 성패는 2명의 장점을 얼마나 잘 뽑아내느냐 그리고 그 것이 꾸준히 이어지느냐의 여부”라고 했다.

권 감독은 이번 시즌 개인의 특출난 기량이 아닌 모두가 잘하는 배구로 이기는 토탈배구를 꿈꾼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말을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도 적용하려고 한다.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흔들리는 선수들의 멘탈을 감안해 가능한 초반에 많은 승수를 쌓아가겠다는 시즌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KB손해보험은 지난 시즌에도 12~1월에 슬럼프에 빠졌다. 새로운 시즌은 1월의 경기 일정이 빡빡하다. 그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라도 초반질주가 필요하다.

시즌 중반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은 체력부담일 수도 있고 힘든 상황에서 버텨내는 노하우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권 감독은 이를 대비하고자 6월에 상상 이상의 연습경기 일정을 통해 선수들에게 극한을 경험하게 했다.

일주일에 4경기씩 치르는 강행군을 4주 연속 하면서 몸이 힘들 때 어떻게 배구를 해야 하는지 선수들이 직접 느끼게 했다. 이를 통해 이길 경기에서는 반드시 승점을 챙기는 요령을 스스로 알아내도록 했다.

KB손해보험. 사진제공|KOVO


● 정민수의 FA영입으로 리시브는 탄탄해졌고 황택의는 여유가 생겼다

전술적으로 리베로 정민수의 가세로 리시브와 수비에서 안정감이 생겼다. 정민수가 알렉스 손현종(황두연)이 맡아야 하는 리시브의 범위를 좁혀주면서 윙스파이커가 공격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해 준 것이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이다. 이제 프로 3년차 세터 황택의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 패스에 여유가 생긴 것도 팀의 전체의 배구모습을 달라지게 만든 요소다. 손재민 전력분석관은 “황택의가 상대 센터의 움직임을 보고 공을 준다. 감독의 지시사항을 이해하고 코트에서 플레이하는 능력이 생겼다. 정민수의 가세로 리시브가 안정되면서 황택의가 더 편하게 연결할 수 있게 된 것도 있다”고 했다. 아직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이강원이 잠재력을 폭발하면 봄배구도 가능하다.

지난 시즌 장염으로 단 하루 훈련을 빼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훈련에 개근했던 알렉스는 팀과 궁합이 잘 맞는다. 사람들은 경기 때 보여주는 표정을 보고 오해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팀에 충실한 선수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리더이자 주득점원 역할을 하는 그는 KB손해보험에서도 똑같이 동료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우승을 정말로 원한다. KOVO컵 때 복부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출장을 고집했던 이유였다. 지금은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단계다.

팀의 성적은 코트가 아니라 숙소생활 그리고 팀의 문화에서 결정될 때가 많다. 권순찬 감독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선수들의 사생활을 보장하면서 훈련에 집중해달라고 요구한다. 숙소는 오후 11시 취침이다. 기본만 지키면 나머지는 선수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비시즌 동안 특별한 이벤트성 훈련 없이 꾸준하게 훈련장에서 땀을 흘리며 선수들을 원팀으로 만들어왔다.

베테랑 이선규 하현용 곽동혁이 솔선수범해서 모범을 보이고 정민수가 중간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을 하며 팀문화를 바꾸고 있다. 권 감독은 “작년 4위는 생각도 못했다. 다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다. 올해는 욕심이 생긴다. 이번에는 PO진출이 목표다. 선수들도 그런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칭찬은 선수들이, 욕은 감독이 먹겠다. 감독은 선수들을 대신해 악역을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배구는 개인이 튀지 않고 팀이 잘하는 팀워크의 배구”라고 덧붙였다. 선수보다 더 위대한 팀을 꿈꾸는 KB손해보험의 토탈배구가 구단의 새로운 정책방향과 어울려 이번 시즌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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