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게 힐만은 아버지·정신적 지주·냉철한 지도자였다

입력 2018-11-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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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선수단이 12일 잠실에서 끝난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서 우승을 확정한 뒤 트레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SK를 떠나는 힐만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 냉철한 지도자였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제가 이런 지도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55) 감독에 대한 물음에 되돌아오는 공통된 답이다.

힐만 감독이 SK 감독실을 지키는 동안 그곳을 드나드는 문턱은 한없이 낮았다. 소통을 즐기는 그는 선수들과의 일대일 대화를 참 좋아했다. 몇 평 남짓한 공간에서 힐만과 SK 구성원은 야구와 인생을 이야기했다. 때론 가족의 안부, 아내와의 첫 만남도 대화의 주제가 됐다. 덕분에 힐만 감독은 그라운드 위 서로를 스치듯 지나가서는 알 수 없는 선수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SK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팀의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일궈낸 배경이다.

SK 힐만 감독(왼쪽에서 두번째).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아버지

선발 투수 박종훈은 힐만 감독이 SK를 지휘하는 2년의 시간동안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올해 페넌트레이스에선 팀 내 최다 14승(리그 4위)을 챙겼고, 포스트시즌(PS) 세 경기에서도 김광현에 이은 두 번째 토종 선발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대내외적으로도 박종훈은 SK에게 있어 최고의 발견이란 평가를 받는다.

박종훈에게 힐만 감독은 ‘아버지’였다. “프로 무대에 와서 많은 감독님들을 만났지만, 내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은 힐만 감독님이 처음이었다.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 오늘 내 기분이 어떤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일 같이 물어본다. 장난도 많이 치고, 진지한 대화도 많이 나눴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아버지였다.”

먼 훗날 지도자를 꿈꾸는 박종훈에겐 좋은 본보기였다. 그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선수들에게 더 다가가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줬다”며 “나도 나중에 감독, 코치가 된다면 선수들의 속사정을 아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힐만 감독의 소통 리더십 등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분이라 떠나보내기 아쉽다. ‘조금만 더 함께했으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SK 힐만 감독. 스포츠동아DB


● 정신적 지주

토종 에이스 김광현은 힐만 감독의 철저한 관리 아래 팔꿈치 수술 후 성공적인 복귀 시즌을 치렀다. 부상으로 2017년을 통째로 날린 터라 힐만 감독과 짧고 굵은 1년을 보냈다. 김광현이 마운드로 돌아오는데 힐만 감독의 공은 상당했다. 김광현은 “선수들에게 참 친근하게 다가오는 지도자였다. 거의 한달에 한번씩 개별 면담을 했다”며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쉬는 날 뭘 했는지가 첫 대화다. 사적인 이야기를 다 한 뒤에야 야구 이야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항상 먼저 몸 상태를 물어봐주고, 관리를 잘 해주셨다.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힐만 감독은 김광현에게 ‘정신적 지주’가 됐다.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면에서 멘토가 되어준다.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코치님들과 거의 매일 웨이트 운동을 하는 등 선수들이 본받을 점도 많다. 올 시즌 늘 (성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항상 옆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신을 바로 세워줬다. 아마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 일거다.”

SK 힐만 감독(왼쪽에서 세번째). 스포츠동아DB


● 냉철한 지도자

힐만 감독은 흥이 많다. 때론 코치들이 한데 모인 감독실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한다. 가끔은 특이한 가면을 쓰고 선수 식당을 활보하는 날도 있다. 무게를 잡지 않는 분위기 메이커다. 정경배 타격 코치는 “확실히 우리나라 감독들과는 다르다. 어디 가서 코치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감독실에서 춤추는 감독을 볼 수 있을까?”라며 웃는다.

모든 일 앞에서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경기를 준비하고 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냉철하다. 정 코치는 “굉장한 내공을 갖고 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안 한다. 늘 경기장에 나오면 선수들을 껴안아 준다”며 “대신 선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냉정하다”고 했다. 그는 “코치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만약 어떤 선수를 기용하고 싶으면 ‘그 선수를 써야하는 이유를 대서 나를 설득해 봐’라고 한다”며 “설득력이 있는 답을 내면 곧장 수긍한다. 그래서 코치들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SK와 힐만 감독은 ‘KS 우승’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하지만 SK는 힐만 감독을 향한 그리움을 꽤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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