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세계축구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10일 열린 K리그2 충남아산-부천FC전에선 부천 외국인 공격수 바이아노가 그라운드에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주심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외면’을 받았다. 무관중 경기(사진)와 더불어 코로나19가 바꾼 축구장의 새로운 풍경이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 원창호 심판위원장은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그 장면이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면서 “최광호 주심이 너무 잘 대처해 우리 심판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원래 선수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게 맞다. 선수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더라도 주심이 도움을 줘야한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개막 이전 연습경기 때부터 주심들에게 가급적이면 선수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라는 지침을 내려 대비했다. 최광호 주심이 무심코 손을 내밀 수도 있었지만 정말 대처를 잘 했다”며 거듭 칭찬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심판 매뉴얼도 꼼꼼하게 짜여졌다. 그라운드에선 침 뱉기나 대화, 신체접촉 등이 금지된다. 물도 따로 마신다. 대기심은 마스크를 쓴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엄격하다. 원 위원장은 “경기를 앞두고 심판들의 몸 상태 체크와 보고가 계속 이어진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배정을 바꾼다”면서 “심판 때문에 경기가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창호 심판위원장. 사진제공|KFA
올해 K리그의 심판 관리 주체가 프로축구연맹에서 대한축구협회로 바뀌었다. ‘심판 관리는 각국 협회가 독점적 권한을 갖고 행사해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에 심판 선발과 교육, 배정, 평가 등 모든 것을 협회가 책임진다. 원 위원장은 “부담감이 컸다”면서도 “첫 경기를 생각보다 잘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사상 첫 무관중 개막은 선수들에겐 낯설었다. 그렇다면 심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원 위원장은 “개막전에 나선 심판들에게 물어보니 생소하다고 하더라. 익숙했던 북소리나 확성기, 관중 함성이 없어 어색했고, 흥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고 말했다. 이어 “관중이 없어 심판 입장에선 정신적인 압박감이 덜해진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올 시즌 달라진 것 중 하나가 VAR(비디오판독) 전담 심판을 신설한 것이다. 2017년 K리그에 처음 도입된 VAR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지만 전문성을 더 높여야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작년 VAR 판독 오심은 16회였다. 50% 이상 줄이는 것이 올해 목표다. 원 위원장은 “VAR로 판정이 번복됐다고 해서 심판에게 출전정지 등의 페널티를 주지는 않는다. VAR은 판정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기 때문에 판정 정정이 큰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VAR을 했는데도 오심이 나오는 건 용납 안 된다. 강한 페널티를 줄 예정이다”고 밝혔다. K리그 개막 라운드에서는 뚜렷한 오심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최근 우려를 낳고 있는 게 심판 배정 방식이다. 협회는 1주일 전에 심판을 배정하고, 3일 전에 최종 명단을 공개한다. 지난해까지는 심판들이 거점 숙소에 모여 경기 하루 전이나 당일에 배정 받았다. 이번 결정으로 승부조작 등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축구가 멈춘 가운데 K리그가 개막해 불법 베팅업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원 위원장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가보고서를 심판 스스로 쓰게 하고, 영상 분석팀의 인력을 늘려 세밀하고 분석하며, 평가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방향이 심판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구단이든 제3자든 배정과 관련해 심판에게 접촉이 오면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다. 이것이 발각될 경우엔 엄하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