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는 이날 9개의 속공을 성공시켰다. 흥국생명은 고작 1개였다. 성공률도 12.5%로 낮았다. GS칼텍스 김유리(30)는 9개의 팀 속공득점 중 무려 8개를 혼자 기록했다. 성공률도 64.29%로 높았다. 김유리는 경기 후 수훈선수로 방송 인터뷰를 했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중계방송석의 해설위원이 먼저 눈물을 흘리고, 그것을 본 선수가 따라서 울고, 선수 앞에서 응원하며 인터뷰를 지켜보던 동료들은 “울지 마”라며 달랬다.
V리그 경력 9년차의 김유리는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못할 뻔했는데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한유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인터뷰 도중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캐스터가 눈물의 이유를 묻자 “(김)유리가 고생한 것을 알아서…”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김유리는 “(한)유미 언니에게 센터로서 힘들다며 하소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위원은 다음날 그 상황을 묻자 “김유리처럼 주전이 아닌 뒤에 있는 선수들의 마음이 좋을 리는 없을 텐데도 팀을 위해 내색도 하지 않고 웜업존에서 누구보다 더 응원해주는 것이 기특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몇 차례 갈림길에서 선택이 달랐다면 김유리는 이날 흥국생명 선수로 뛰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2010~2011시즌 신인드래프트 때 흥국생명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IBK기업은행이 창단하면서 서울중앙여고, 부산남성여고, 진주선명여고 졸업생 10명을 우선 지명하던 해의 드래프트였다. 김유리와 흥국생명의 인연은 짧았다. 2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그 뒤 실업배구를 거쳐 2014~2015시즌부터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2017~2018시즌을 앞두고 김해란(KGC인삼공사→흥국생명), 황민경(GS칼텍스→현대건설), 김수지(흥국생명→IBK기업은행), 염혜선(현대건설→IBK기업은행), 박정아(IBK기업은행→도로공사) 등 5명의 자유계약선수(FA)가 팀을 옮겼다. 보상선수 결정과 순서가 아주 복잡했다.
감독들은 태국에서 벌어진 한·태올스타전 때 모여서 의견을 조율했다. 센터 김수지의 공백이 컸던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과 상의했다. 세터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김유리를 지명해주면 넘겨받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황민경을 현대건설에 빼앗긴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보상선수로 한유미 해설위원을 선택했다. 그를 아꼈던 이도희 감독은 보상선수 지명 다음 날 한유미-김유리의 트레이드를 선택했다.
그렇게 GS칼텍스 선수가 된 김유리는 이날 정규리그 우승을 사실상 결정할 뻔했던 중요한 대결에서 ‘인생경기’를 했다. 김유리의 활약으로 GS칼텍스는 역전우승의 희망을 이어가게 됐다.
V리그에는 김유리처럼 “나도 언젠가는 경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비록 코트에는 자주 보이지 않지만 웜업존에서 코트를 바라보며 열심히 꿈을 키우는 선수들의 그 ‘희망’을 응원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