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대, 출신지는 물론 걸어온 길까지 달랐다. 언뜻 보면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 것 같은 사이. 하지만 예의를 지키면서도 할 말은 하는 동생의 패기에 형도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벌써 13년, 이제는 가족만큼이나 자주 보며 속내를 털어놓는 형제와 다름없다. 5년 전 이맘 때, “같이 해보자”던 동생에게 이젠 형이 “함께 하자”고 손을 뻗었다. 정훈(35)은,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이대호(40)를 이대로 허무하게 보낼 생각이 없다.

정훈→이대호와 정훈←이대호

정훈은 5일 롯데와 3년 총액 18억 원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었다. 유일하게 해를 넘기며 마지막까지 남았던 FA. 그만큼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힘들 때 떠오른 얼굴이 이대호였다. 정훈은 계약 전날인 4일 밤, 괌에서 개인 훈련 중인 이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통화. 이대호는 “네 권리니 네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형은 네가 롯데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적정한 선이라면 남아서 함께 성적내자”고 당부했다.

정확히 5년 전의 ‘데자뷔’다. 2016시즌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었던 이대호는 1년 계약 종료 후 행선지를 검토 중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지는 넓었다. 그때 이대호와 함께 사이판에서 몸 만들던 정훈이 진심을 꺼냈다. “형이 돌아와서 함께 롯데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이대호가 해외무대를 뿌리치고 한국을 밟은 이유가 오롯이 정훈은 아니지만, 둘의 끈끈함과 ‘롯부심’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둘을 오래도록 지켜본 관계자는 이들의 친분이 시작된 이유로 정훈의 용기를 꼽았다. 정훈은 2010시즌부터 육성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이미 최고스타였던 이대호는 그해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나이도, 위치도 달랐지만 정훈은 이대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대선배에게 쉽게 다가가 먼저 농담을 던지고 장난치는 후배. 혼이 나면서도 팀을 위해 해야 할 말은 하고, 또 예의는 지키는 정훈에게 이대호도 마음을 열었다고.

이대호의 은퇴식을 최대한 미루기 위해

둘에게 2022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대호는 지난 시즌에 앞서 롯데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이 끝난 뒤 유니폼을 벗겠다는 선언. KBO리그가 낳은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 올 시즌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이다. 선수도, 팀도, 팬도 아름다운 이별을 바란다.

결국 성적이다. 이대호 복귀 시즌이던 2017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롯데는 이후 7위~10위~7위~8위에 그쳤다. 앞선 몇 년간 그랬듯 하위권에 머문 채 산술적 경우의 수만 따지면서 9월 이후 경기를 치르는 초라함은 이대호의 마지막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훈은 “올해는 공식적으로 (이)대호 형의 마지막 시즌이다. 이대로 그 형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남들은 우리가 이빨 빠졌다고 하는데 다르다는 걸 보여주겠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대호 형의 마무리를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비단 정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5년 전 형을 붙잡았던 동생은, 이번에 형이 뻗은 손을 잡았다. 지금까지의 브로맨스 서사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제 올해 마지막 퍼즐 조각을 채울 차례다. 이대호도, 정훈도, 사직구장을 채울 팬들도 눈물 흘릴 빅 보이의 은퇴식. 그 시간은 늦어질수록 좋을 듯하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