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규시간 90분 내에 승부를 가리는 축구에서 1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강인(21·마요르카)이 29일(한국시간)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끝난 가나와 2022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증명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53·포르투갈)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이날 2-3으로 석패했다. 0-2 뒤진 후반 맹렬한 반격으로 동점에 성공했으나, 또 한 번 상대의 역습에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1무1패, 승점 1의 한국은 12월 3일 0시 같은 경기장에서 열릴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3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16강행을 바라볼 수 있다.
2선 공격수 이강인은 쓰라린 패배 속에서도 빛났다. 0-2로 뒤진 후반 12분 권창훈(28·김천 상무) 대신 그라운드를 밟은 그는 1분 만에 빠른 돌파와 정확한 왼발 크로스로 조규성(24·전북 현대)의 헤더 골을 배달해 ‘게임체인저’ 역할을 수행했다. 가물에 단비와 같던 이 골로 탄력을 받은 한국은 2-2 동점까지 만들 수 있었다.

이강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최대한 공격적으로 하라”는 벤치의 지시대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을 질주했고, 날카로운 전진 패스로 전방에 힘을 실어준 이강인은 생애 첫 월드컵에서 수확한 첫 공격 포인트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30분 놓친 프리킥을 비롯해 자신이 몇 차례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것을 가슴아파했다.
“어떻게든 팀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골 기회를 살렸어야 했다”고 자책한 이강인이지만 월드컵에서 확실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우루과이와 1차전(0-0 무)에서도 후반 29분 교체로 들어가 준수한 플레이로 큰 기대감을 안기더니 가나와 2차전에선 나름 결실을 맺었다.
표현 그대로 인생역전이다. 벤투 감독에게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우수선수(MVP) 출신의 이강인은 ‘주력 자원’이 아니었다. 월드컵 최종엔트리(26명)에 발탁됐을 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공격에 비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수비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당시 이강인의 선발 배경으로 “몇 가지가 발전했다”고 벤투 감독이 밝혔는데, 그 중 하나가 향상된 수비가담으로 해석됐다.

이강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게 플랜B에 가까웠던 이강인이지만 플랜A의 몫을 해냈다. 가나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코너킥 기회를 끊어버린 주심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은 벤투 감독을 대신해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대표팀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49·포르투갈)도 “이강인이 투입돼 창의성이 발휘되고 공격속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 교체 투입돼 좋은 역할을 했다. 가진 기량을 잘 표출했다”고 칭찬했다.
이제 시선은 포르투갈전으로 향한다. 16강 진출을 위해선 무조건 이겨야 한다.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한 승부다. 기대만큼의 실력을 발휘한 이강인의 선발출전에 조심스레 힘이 실린다. 유럽 빅리그 중 하나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쌓은 실력이 유럽(포르투갈)과 대결에서도 통하리란 기대감이다. 4년간의 준비를 검증받고 현주소를 확인하는 월드컵, 이제 우리의 운명을 가릴 최후의 승부에 이강인도 모든 것을 건다는 의지다.
도하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