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를 제치고 즐겨야 하는 골프가 있다- 솔하임컵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9〉

입력 2024-09-18 14: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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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솔하임컵이 개최된 로버트트렌트존스 골프 코스의 13번, 14번 홀. 사진제공 ㅣ LPGA

2024년 솔하임컵이 개최된 로버트트렌트존스 골프 코스의 13번, 14번 홀. 사진제공 ㅣ LPGA


초기 골프 코스는 물과 관련이 없었다. 바닷물이 물러난 모래 위에 잔디가 자라면서 링크스 골프 코스가 생겨났다. 깊은 모래층 때문에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코스가 내륙으로 들어 온 초기에도 두꺼운 모래층을 가진 곳에 골프 코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물과 관련이 없었다. 최고의 히스랜드 코스인 서닝데일, 스윈리포리스트, 우드홀스파, 간톤, 월튼히스에는 워터해저드가 없다.

링크스와 히스랜드 골프 코스만으로는 증가하는 골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에 모래가 없는 땅에도 코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지관리를 위해서 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호숫가에 골프 코스를 만들었다. 아일랜드 그린을 만들어 재미를 더하기도 했고, 커다란 워터해저드를 넘기는 장타를 요구하기도 했다. 물은 현대 골프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지만, 더러는 지나치게 인공적인 면도 생겼다.

골프란 여유 시간에 즐기는 게임이지만, 세상에는 갈 수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가야 하는 골프 코스가 있다. 최초의 골프 코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최초의 골프클럽 HCEG가 보유한 뮤어필드, 최고의 링크스 코스 로열 카운티다운,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어거스타 내셔널이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당대 최고 디자이너의 혼이 담겨 있는 곳이 있다.

우리가 모든 골프 코스 설계자를 알 수는 없지만 해리 콜트, 도널드 로스, 로버트 트렌트 존스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골프 코스에서 인공미를 최대한 뺀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많은 명문 코스가 해리 콜트의 손을 거쳤다. 내년도 디오픈이 개최되는 로열 포트러시가 그의 대표 걸작이다. 골프계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도널드 로스는 스코틀랜드 도녹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400개가 넘는 골프 코스를 디자인했다. 올해 US오픈이 열린 파인 허스트 No.2가 그의 걸작이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는 500개에 달하는 골프 코스를 만들었다. 올해 솔하임컵이 개최된 로버트트렌트존스 골프클럽의 코스가 그의 대표작이다.

이곳은 큰 호수를 끼고 있지만, 호수를 넘기는 장타를 요구하지 않고, 아일랜드 그린이나 인공 구조물이 없다. 호수와 코스 사이를 와일드 러프로 조성하여 워터해저드가 플레이에 개입할 여지를 줄였다. 대신에 햇빛을 반사하는 호수 표면의 움직임이 골프코스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물이 골프 코스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기에 워터해저드가 골프 초기부터 골프 코스의 일부였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고 웅장한 무정형의 벙커는잘 정돈된 커다란 그린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 페어웨이와 그린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면, 코스 디자이너가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식물의 생장까지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라이더컵과 솔하임컵에서 원정팀이 홈팀을 이기기는 어렵다. 핀까지의 거리, 잔디의 길이, 그린 스피드 등을 홈팀 주축 선수에게 맞게 셋업 하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하다. 경기 첫날은 더욱 그렇다. 둘째 날부터는 원정팀 선수도 코스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솔하임컵 첫날 미국팀은 6대2로 앞서갔다. 둘째 날 넬리 코르다와 앨리슨 코르푸즈는 13번 홀에서 동점을 만들었다. 14번 홀 두 번째 샷에서 코르푸즈가 유틸리티로 탑핑을 범했다. 물을 향해 날아가던 공은 워터헤저드 옆 라인을 타고 굴렀다. 슬라이스였기 때문에 그린에서 멀어져야 했지만, 벙커 러프를 지나며 방향이 바뀐 공은 그린에 올라 라이를 타고 핀에서 일곱 걸음 거리에 멈췄다. 물이 골프 코스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행운이었다. 이글 퍼팅에 성공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끈 넬리 코르다는 ‘지금껏 본 골프 샷 중 가장 인상적이다’라고 코르푸즈 샷을 평했다.
둘째날 오전 라운드 14번 홀에서 이글 퍼팅에 성공하고 좋아하는 넬리 코르다. 사진제공 ㅣ LPGA

둘째날 오전 라운드 14번 홀에서 이글 퍼팅에 성공하고 좋아하는 넬리 코르다. 사진제공 ㅣ LPGA


넬리 코르다는 ‘이번 솔하임컵은 골프 코스에서 보낸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웃고 가장 많이 흥분한 순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나라와 대륙을 대표하여 최고의 골프 코스에서 압박감 높은 경기를 펼친 경험은 프로선수에게 큰 자산이 된다. 그리하기에 많은 프로선수가 라이더컵과 솔하임컵 참가에 큰 의미를 둔다.



우리나라 남자 선수는 프레지던츠컵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한다. 우리 여자 선수에게도 솔하임컵에 필적할 대회가 필요하다. 주니어선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미국과 유럽의 어린 선수는 주니어 라이더컵, 워커컵, 주니어 솔하임컵, 커티스 컵을 통해서 최고의 골프 코스에서 다양한 방식의 플레이를 경험한다. 그들은 큰 대회에서 중압감을 느끼고, 중압감을 극복하며 골프의 재미를 알게 된다. 우리 어린 선수들에게도 만사를 제쳐놓고 가야 하는 골프 코스에서 벌이는 솔하임컵 같은 경험이 필요하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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