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心이뭐길래…]우리에겐선수들이‘동방신기’

입력 2008-06-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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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롯데전을 앞둔 5일 사직구장.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비가 쏟아졌다. 이미 입장해있던 1만 여명의 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우비와 우산을 샀다. 경기 개시가 늦춰져도 꼼짝 않고 서서 “야구해!”를 외쳤다. 장대비도 꺼뜨릴 수 없는 사직의 열기.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야구 열풍의 진원지다. ○ 서로 다른 팬들이 하나가 되다 오랜 팬 정현열(68)씨는 “비 맞으며 야구 보는 것도 운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오래 전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홀로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야구장에 온다. 경기가 비로 취소돼도 개의치 않는다. “소풍도 원래 가기 전 날 설렘이 더 크지 않습니까. 여기 오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으니, 괜찮습니다.” 야구의 ‘ㅇ’자도 모르던 임정화(24)씨는 동갑내기 남자친구 구이은씨 덕분에 롯데를 좋아하게 됐다. 마침 이 날은 임 씨의 야구장 데뷔전. 새로 산 롯데 유니폼을 입은 임 씨는 “야구하는 시간만 되면 사라지는 남자친구를 2년째 만나다보니 나도 팬이 됐다”며 웃었다. 김은희(17)양과 김슬기(17)양은 학산여고를 함께 다니는 친구들과 종종 야구장을 찾는다. 손에는 직접 만든 플래카드가 들려있다. 이들에게 롯데 선수들은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아이돌 스타다. 반대로 젊은 남성들은 야구장에 스트레스를 풀러 오기도 한다. 대학 동창들과 함께 온 손정진(26)씨는 “목놓아 부산갈매기를 부르다보면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고 했다. ○ 응원팀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 롯데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팬도 있다. 김진훈(36) 씨는 네 살 난 아들 성진군을 데리고 진해에서 부산까지 왔다. 롯데가 역전에 성공하자 아들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던 그는 “성진이가 자라서 친구들과 야구장에 간다고 하면 ‘치킨 사 먹으라’며 용돈을 쥐어주고 싶다”는 꿈을 털어놨다. 사직구장에는 6일에도 어김없이 만원 관중이 찼다. 음료수를 파는 상인조차 카트에 ‘가을에도 장사하자!’라는 피켓을 달고 있을 정도다. 광주의 야구 열기를 이끌고 있는 ‘타이거즈를 사랑하는 모임’ 소속 이수현(30)씨는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KIA를 항상 사랑하는 게 팬의 자세”라며 “광주구장도 롯데처럼 홈팬들로 가득 차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팬들에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운명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인생의 한 부분이다. 사직구장의 정현열씨는 이렇게 말했다. “팬이 돼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기분 모른다니까요.” 사직=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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