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SK“윤길현파동반성많이했다”…상대팀두산엔사전통보양해구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윤길현 욕설 파문’이 사상 초유의 결과로 이어졌다.
SK 김성근(65) 감독이 자체 징계 차원에서 19일 잠실 두산전에 결장했다.
김 감독은 이날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책임자로서 진심을 보여야겠다고 판단해 한 경기 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SK를 맡으면서 야구는 물론 선수들의 자세나 마음가짐을 강조해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면서 “살을 깎아내는 듯 고통스럽다. 너무 늦게 결단을 내린 건 아닌가 걱정이다”고 사과했다.
● 전례 없는 ‘자체 결장’…공식 출장으로 기록
국내 프로야구에서 감독이 결장한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1997년 9월3일 잠실 삼성-LG전에서 당시 삼성 백인천 감독이 더블헤더 1차전 도중 귀가해 2차전을 감독 없이 치렀다. 투수 전병호가 사인을 무시했다는 게 경기장을 떠난 이유. 삼성은 이튿날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기 중 벌어진 사건 때문에 감독과 구단이 직접 결장을 택한 경우는 전례가 없다. 김 감독이 여전히 엔트리에 올라있기 때문에 정식 감독대행 경기도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날 경기는 김 감독의 1907번째 공식 출장경기로 인정된다.
● 조심스러운 SK와 어색한 두산
김 감독의 자청을 받아들인 SK의 대처는 사뭇 조심스러웠다. 민경삼 운영본부장이 직접 김경문 감독을 찾아 결장 사실을 전달했고, 박철호 홍보팀장이 두산 측에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또다른 구설수를 막기 위해 사소한 절차 하나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기색.
선수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는 듯 했지만 얼떨결에 하루 책임자가 된 이만수 수석코치는 민감한 질문을 피하려는 듯 “파이팅!”만을 연발했다. SK 관계자는 “선발 오더는 감독님이 새벽에 직접 써서 전달하신 것”이라면서 “팬들이 그만 노여움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사령탑 없는 팀과 맞붙어야 하는 두산 선수들이 더 어색해했다. “그래도 되는 거냐”며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감독님이 안 계시니 오히려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겠나”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은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지 않나. SK가 너무 잘하다보니 안좋은 일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실|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