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한화정민철,강속구대신아리랑볼“살기위해나를바꿨다”

입력 2009-0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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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하자면 새해 화두는 희망이 아닙니다. 생존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시대의 사명처럼 돼버렸습니다. 아무리 받아들이기 싫어도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요. 우울한 이 시국에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다지 각광받지 못한 고졸 신인 투수는 프로 데뷔전에서 만루홈런을 맞았습니다.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서는 2년간 거의 2군에만 있었습니다. 시속 150km대 강속구를 뿌리던 파워피처였는데 언젠가부터 직구 스피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한국에 복귀했건만 구위는 떨어졌고, 팔꿈치는 아팠습니다. 심지어 1승도 못 올린 시즌도 있었죠. 그러나 이 투수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마운드에 서있습니다. 단순히 버틴 게 아니라 프로야구 우완 역대 최다승(161승)을 비롯해 20완봉승-60완투승, 2363.2이닝, 1640탈삼진을 쌓았습니다. 서른일곱 정민철이 들려준 오뚝이 야구인생은 이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는 응원가처럼 들립니다. ○생존의 철학Ⅰ=‘덕분에’ 마인드 정민철은 행운이라고 감사할 일이,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숨넘어갈 지경에 몰리면 어김없이 은인이 나타나 구해줬답니다. 대전고 2학년 때부터 영입을 제의해준 한화도 고맙고, 프로선수로 단련을 시켜준 김정무 당시 코치(현 한화 운영팀장)도, 사람이 없어서 시뮬레이션 볼을 던지러 1군에 올라온 그를 그 다음날 개막 엔트리에 넣어주고 선발 기회까지 준 김영덕 전 감독도 감사합니다. 데뷔 이후 8년 연속 두 자리 승수는 김상국 포수 덕분이라 생각하고, 1997년 노히트노런은 포수 강인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믿습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구대성과 타선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답니다. 일본에 가서 힘들었을 적엔 부인 김경아씨가 곁에 있어줘서 버틸 수 있었고, 2002년 복귀 당시 프로 사상 첫 4억 연봉 시대를 연 것은 작고한 한화 황경연 전 단장의 배려라고 여깁니다. ‘0승 투수’로 몰락, 은퇴기로까지 몰렸던 2004년 겨울을 넘길 수 있었던 원천은 김인식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서였다고 떠올립니다. ○생존의 철학Ⅱ=자존심이 아니라 목표를 위해 던진다 천성이 낙천적인 정민철이 야구 때문에 눈물을 흘린 기억은 딱 한 번입니다. 2004년 0승6패, 방어율 7.67의 성적. 자존심 때문에라도 은퇴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면 그만해”란 아내의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첫째 우영군을 임신했는데 만삭이 된 아내의 배웅을 받고, 신인들이나 가는 마무리 훈련 참가를 위해 택시에 탄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일본 나가사키 전훈지에서 출산 소식을 듣고 자판기 맥주로 축하파티를 열었는데, 그때의 쓸쓸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의 인고는 이듬해 9승(3패)으로 보답 받았고, 2차례의 프리에이전트(FA)까지 롱런의 발판이 됐습니다. 일본 요미우리에 임대 진출한 무렵 스피드가 130km대로 저하됐습니다. 구속을 올리려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지만 부작용. ‘정민철은 끝났다’란 말까지 흘렀고요. 나락에 떨어지면 사람은 2가지 갈림길에 서는 법이지요. 자존심을 위해 미련 없이 은퇴하는 길과 생존을 위해 자신을 바꾸는 길. 이상훈이 전자라면, 정민철은 후자겠죠. 왕년의‘닥터 K’ 파워피처는‘아리랑 볼’을 던지는 기교파로의 변신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현실을 빨리 받아들였고, 마운드에 서 있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마운드에 서 있는 게 나의 자존심”이라고. 200승이란 필생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그는 변신을 마다하지 않을 각오입니다. ○생존의 철학Ⅲ=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 본인 표현을 빌리면 그는‘무던한 사람’입니다. 과거는 좋았든 나빴든 바로 털어버립니다. 그의 입에선 “레전드”와 “빵승투수”란 농담이 동시에 나옵니다. 영광도, 오욕도 그의 궤적이니까요.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곧 콤플렉스에서 자유롭다는 의미겠지요. 입단했을 땐 장종훈 이상군 송진우 선배를 보고 신기했는데, 지금은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와 같이 야구하니까 신기하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는 돈에 대해 무감합니다. 이제껏 연봉협상에서 다퉈본 기억이 없답니다. 한화가 정민철을 버리지 않는 한, 평생 한화맨으로 남을 거랍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LG 정민철’, ‘롯데 정민철’ 하면 그의 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 여겨섭니다. ○생존의 철학Ⅳ=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 그는 올 시즌을 야구 인생의 또 하나의 고비라 봅니다. 첫 아이 출생 후 재기했는데 지난해 시즌 중 둘째 아들 우제군이 태어났으니 또 일어설 계기가 만들어진 셈이죠. 가족 뿐 아니라 늘 신뢰하고 기회 준 김인식 감독을 향한 죄스러움도 갚아야 합니다. 그는 야구장에 오는 게, 유니폼을 입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아픈 곳을 또 다치지 않는 한 오래하고 싶답니다. 올해로 그는 프로 인생 18년째를 맞습니다. 이만하면 ‘생존의 달인’아닐까요. PS. 이 험한 세상, 당신은 살아남을 자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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