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MLB 클래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 모자와 유니폼, 점퍼를 입고 자신의 첼로와 함께 포즈를 취한 조형준. 그는 “야구 얘기라면 하루 종일 할 수도 있다”며 열혈 야구팬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각본 있는 드라마’ 음악과 닮아
미국 영화 ‘메이저리그’에 매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광팬 됐죠
“첼로는 포수, 퍼스트 바이올린은 투수, 세컨드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수비수와 같죠.”미국 영화 ‘메이저리그’에 매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광팬 됐죠
첼리스트 조형준(35)은 그야말로 열렬한 야구 마니아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 소속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광팬. 올해 시즌부터 ‘가디언스’가 됐지만 팬들에겐 여전히 100년 넘게 불러 온 ‘인디언스’가 입에 착착 붙는다.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와후 추장의 저주’로 유명한 팀이기도 하다.
“야구 얘기라면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더니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티셔츠 몇 벌과 점퍼, 모자. 모두 인디언스 굿즈다. 그가 하얀 이를 보이며 사진기자에게 웃어 보였다.
“뭘 입고 찍을까요?”
부산에서 태어나 예고를 다니다 도독해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드레스덴국립음대,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예술대에서 유학. 칼 다비도프 국제첼로콩쿠르 3위, 그리스 테살로니카 국제실내악콩쿠르 듀오부문 3위, 이탈리아 몬탈토 리구레 국제음아가콩쿠르 전체대상을 받았다.
솔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그는 아벨콰르텟의 멤버로서도 유명하다. 현재 한국 실내악을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단의 하나인 아벨콰르텟은 201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요제프 하이든 국제실내악콩쿠르에서 한국인 현악사중주단 최초로 1위를 하면서 국제적인 스타악단으로 부상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첼리스트가 됐지만 조형준은 중학교 때까지 부산대표 수영선수로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하던 수영 유망주였다. 첼로는 프로 연주자로서는 늦어도 한참 늦은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 수영과 병행했다. 그래서일까. 키 180을 훌쩍 넘긴 그는 기골이 장대한 독일학생들에게도 체격으로 밀려본 적이 없단다.
스스로 “본투비 운동선수 기질”이라는 그는 어린 시절 수영을 하면서도 눈은 야구에 가 있었다. 1993년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와 삼성의 경기를 본 ‘첫 직관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열혈팬이 된 계기는 이 팀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 ‘메이저리그’였다. 톰 베린저, 찰리 쉰, 코빈 번슨 등이 출연한 이 영화에 감동을 받은 조형준은 달빛이 교교히 흘러드는 창문 아래에서 홀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연주하며 평생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팬이 되겠노라 다짐을 하고 만 것이었다(이건 농담입니다).
좋아하는 인디언스 선수를 묻자 그의 입에서는 매니 라미레즈, 데이비드 저스티스, 짐 토미의 이른바 ‘공포의 3·4·5 클린업 트리오’부터 오렐 허샤이저, 드와이트 구든, 찰스 내기, 코리 클루버, 프란시스코 린도어, 호세 라미레즈, 셰인 비버의 이름이 순식간에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첼리스트’를 물었어도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한국선수 위주로 편성되는 국내 메이저리그 방송환경 탓에 대부분 새벽 공식 홈페이지 문자중계, 라디오, 유튜브로 접할 수밖에 없지만 ‘할 수 있다면’ 인디언스의 시즌 거의 전 경기를 섭렵하는 중. 그의 방을 채운 티셔츠, 점퍼, 양말, 지갑, 가방, 후드 등 인디언스 굿즈는 그가 첼로 다음으로 아끼는 보물들이다.
“야구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각본(악보)있는 드라마’인 음악과도 많이 닮았어요. 어찌 보면 야구도 9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같거든요.”
인터뷰를 마친 조형준은 “12월에는 아벨콰르텟과 개인적인 연주회들이 있다. 와주시면 기쁠 것”이라며 첼로 케이스를 등에 메고는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이 꼭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하는 야구선수처럼 보여, 조금 웃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