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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라는 두 끝 지점에서 출발해 서로를 향해 반씩 걸어오면 한 가운데에서 정확히 만난다. 그 만남의 지점을 우리는 현재라고 말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해답과 같다. 군산의 현재를 잘 가꾼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된 미래 또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과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군산은 비운의 도시이자 하늘이 내린 천운의 도시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호남의 쌀과 물자가 모두 수탈되어 가는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군산평야와 만경평야 그리고 군산항. 이 한가롭고 넉넉한 장소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풍요로움이나 낭만을 논할 수 없었다. 군산 사람들은 이런 아픈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기에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민족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장면을 온몸으로 목격해 왔다. 군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까닭은 바로 군산 시민들이 당시의 상황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놓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결과이다. 군산은 한편 엄청난 미래를 꿈꾸는 도시이기도 하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어놓은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한반도의 지형마저 바꾸어 놓을 예정이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이 꿈은 그저 단순한 의미의 꿈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군산을 여행하는 것은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과 조금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일제와 고은의 흔적, 동국사
동국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일본인 승려가 지은 금강선사였지만 해방 후 김남곡에 의해 ‘우리나라海東國의 절’이라는 뜻의 동국사로 개명되었다. 나지막이 기울어진 길을 올라 입구에 들어서면 검은 빛의 제법 웅장한 동국사가 들어온다. 한 눈에 보아도 우리네 사찰과는 다른 모양새다. 한국적인 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붕의 곡선은 밋밋하면서 싱겁게 떨어지고 전체적인 색감도 검정과 흰색, 짙은 나무색으로 통일해 단조로운 느낌이 강하다. 보통 한국의 절에서 나는 향내도 나지 않는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본채와 요사채를 따로 구분하지만 일본의 동국사는 한 건물에 같이 붙어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동국사의 색다른 이력은 종종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되어 온 시인 고은이 이곳에서 출가를 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고은은 1952년 열 아홉 되던 해에 동국사로 출가하여 ‘중장’이라는 법명을 받고 2년간 동국사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시에는 분명히 동국사에서 기거할 때 맡았던, 느꼈던 그리고 보았던 시적 언어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물론 고은 시인은 군산 출신이다.
중요한 사찰임에도 한 편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과의 부조화는 어쩔 수 없는데 마침 키가 큰 대나무 숲이 우거져 어느 정도 마음의 환기를 도와준다. 뒷마당의 대나무 숲은 항상 그렇게 말없이 동국사가 지내온 세월을 보아왔을 것이다. 걱정이 많았던 대나무였기에 그렇게 다른 곳보다 더 대나무 숲은 심하게, 마치 동국사를 감싸 안는 것처럼 마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안쓰러운 모정, 이것이 동국사 뒤뜰에서 볼 수 있는 숨어있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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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당께, 고우당
동국사에서 큰 길을 건너면 바로 고우당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일본식 가옥 중 한 곳으로 군산에는 이런 적산가옥敵産家屋-자기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들이 110여 군데가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재구성되었고 식당과 선술집, 카페도 겸하고 있다. 고우당은 한자풀이를 하자면 옛 벗들의 장소라는 뜻이지만 사투리 ‘고우당께’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동국사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바로 인접하지만 역시 아담하고 자그마한 일본식 정원이 그 부조화를 희석시켜준다. 도심 속 일본식 가옥에서의 숙박이라는 이색적인 경험임은 분명하며 기본적으로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방문객들의 조심스러움이 필요한 곳이다. 고우당은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겨있는 말투로 우리를 향해 넌지시 한마디를 던진다. 고우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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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무대가 되었던 공간이다. 영화의 배경은 군산이 아니지만 이 사진관은 영화 속 많은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로 작용했다. 작고 적당한 크기 그리고 단층짜리의 알맞은 높이인 초원사진관은 햇살이 내부로 살며시 들어서는 오후 나절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그곳에 들어서면 켜켜이 쌓여있던 그때의 장면과 먹먹한 그림들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날아올라 곧바로 추억의 공간으로 전이된다. 이곳에는 정원과 다림이 나누었던 수줍고 설레며 쓸쓸하고 안타까운 흔적이 묻어있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의 엇갈림과도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나와 그녀 그리고 그 사람이 함께 있다. 초원사진관은 영화에서처럼 ‘사랑해요’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결국 서로에게 ‘사랑해요’라고만 말하는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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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정원과 주택, 히로쓰가옥
히로쓰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고우당이 위치한 월명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의 거주지로 이 일대는 사실 군산사람들이 온 몸으로 지켜낸 커다란 문화유산의 현장과도 같다. 때문에 이곳의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아직 보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일본식 가옥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때로는 다듬고 또 한편으로는 그대로. 보수를 하지 않은 작은 건물 하나하나에도 분명히 어떤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며, 그가 살던 집의 목조 2층 주택과 일본식 정원 등이 당시의 모습을 거의 원형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의의가 큰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 보존과 유지를 위해서 내부 출입은 삼가고 있다. 군산 사람들의 현재를 대하는 자세가 빛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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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카페
미즈카페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30년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구)미즈상사가 원래 이름이다.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의 일대가 일제의 쌀 수탈 최대 거점지역이었기 때문에 가장 쓰라린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때 일제의 은행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검역소로도 운영됐을 정도로 부침이 심한 현장인 미즈카페.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 위치해 있었던 건물을 이전, 개축하여 현재는 군산항 앞 장미동에 미즈커피라는 북카페로 운영 중이다. 장미는 꽃 장미薔薇가 아니라 '수탈한 쌀의 곳간'이라는 뜻의 장미藏米다. 이곳에 카페 미즈와 함께 장미 공연장과 장미 갤러리, 근대건축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장미 공연장은 수탈한 쌀을 보관하던 창고였고 현재의 장미 갤러리는 일본 제18은행의 군산지점이었다. 근대건축관은 옛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이었을 정도로 이 지역은 일제 수탈의 최전방이었다. 카페인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잘 정돈된 다다미방들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편하게 책도 보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이곳이 어떤 역사의 현장인지 제대로 알고 갔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군산문화복합단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2015년 전국5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될 정도로 알차고 볼거리가 많은 방문지이다. 군산 지역의 고고학적 그리고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누리고 즐겼던 예술과 민속자료 등 이 지역 생활 전반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있다. 이곳의 세심한 컬렉션은 군산 시민들이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연구, 관리하며 계승, 발전시켜 왔는가에 대한 귀중한 접근의 결과물들이다. 한낱 그릇과 돌조각, 작은 세간과 의복 그리고 서민들의 초분군산 섬 지역의 짚으로 만든 임시 무덤까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호흡을 불어넣었다. 유산이나 유물은 원래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을 경험할 때 현세의 사람들과 가장 큰 접점이 생기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에. 박물관 2층에는 당시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모형도 조성되어 있다. 저잣거리와 주점 그리고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양품점과 군산역까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커다란 놀이터와 같다. 게다가 학습효과도 놓치지 않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박물관 옆에는 다양한 유럽의 건축양식들이 혼재한 군산세관이 위치하고 있고 공룡발자국 화석과 군산항까지 인접해있어 군산투어를 할 때 시작점으로 잡으면 효과적인 군산여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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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가 흐르는 곳, 군산항
군산항으로 가기 전, 채만식 문학 기념비가 우선 눈길을 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채만식은 그의 대표작이자 역작인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을 통해 한국 문단에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른바 항구가 가지는, 특히 물이 빠지고 난 후 단상의 정점은 역시 허전함에 머문다. 그 허전함은 도심에서 느끼는 그것과는 깊이와 태생 자체가 다르다. 썰물과 함께 빠져 나가버린 비린내 그리고 그 무른 바다 바닥에 자신의 몸을 그제야 기대는 배들. 때마침 갈매기들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이곳에는 적막하고 마른 풍경만이 남는다. 왜가리 한 마리만이 이 넓은 군산항을 거닐며 이곳에 시각적인 풍경을 보탠다. 예전에 이곳은 상어가 자주 나타날 정도로 맑은 바다였다고 한다. 미군의 폭격이 군산항 앞바다에 떨어지면 수 십 마리의 상어들이 배를 뒤집은 채 죽었고 어부들은 그때를 틈타 바다로 나가 죽은 상어를 걷어 올리곤 했다. 상어 뱃속엔 채 소화되지도 않은 명태들이 가득했다며 항구의 매점에서 낮술을 즐기던 토박이 어른이 귀띔해 준다. 그의 얼굴에 군산항의 주름이 보인다.
군산항은 특히 국내에 얼마 있지 않은 부잔교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명 ‘뜬 다리’라고 불리는 부잔교는 서해안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한 부두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다리이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부두에 갯벌이 드러나 배가 부두에 정박할 수 없기 때문에 물이 불어나는 시점에서 다리가 뜨도록 고안된 부잔교. 부잔교의 흔적은 현재 군산항 이외에도 경남 사천과 안면도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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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의 정의, 철길마을
철길마을은 경암동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일제 강점기 말기 제지공장의 원자재 수송을 위해 놓인 철도는 2008년까지 간간이 운행되었으나 현재는 철로만이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800여 미터에 이르는 철길마을 양 옆으로는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들은 그렇기에 집을 그다지 꾸미지 않는 것 같다. 애써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녹슨 자전거와 색이 바란 의자 그리고 볕에 말리는 쪽파 대가리도 아무런 꾸밈없이 그렇게 자리할 뿐이다. 철판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도 아무렇게나 하늘로 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을 마구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허락해준 삶의 공간에 놓인 철길을 잠시 거닐 뿐이다. 여름 소나기와 가을 낙엽 그리고 한 겨울의 눈도 내렸다가, 쌓였다가, 녹으며 그냥 그렇게 사라진다. 그것은 철길의 숙명인 ‘왔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빈티지란 원래 세월에 가치가 덧입혀진 사물이나 공간을 일컫는다. 빈티지라는 단어가 패션이나 다른 분야에 쓰이지 않고 사람들에 부여하는 어떤 고귀한 단어가 된다면 당연히 철길마을 사람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이곳은 분명히 이들이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는 세월의 마당이며, 그 부인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거대한 가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철길마을에는 서서히 상업적인 공간이 들어서는 모양새다. 카페와 작은 식당 그리고 액세서리 가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들 역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므로 또 다른 빈티지가 이어질 것이다. 마치 철길처럼.
한국의 두바이, 새만금방조제와 홍보관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든다, 라는 표현은 사실 피부에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 익숙하지 않고 역사적인 표현을 군산과 부안, 김제가 새만금간척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알려지던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 km보다 1.4 km나 더 길어 새롭게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새로운 문명이자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이며 또 한반도의 그림을 바꾸어놓을 대규모간척사업 새만금.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되면 이곳은 아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
새만금기념관은 군산에서 시원하게 이어지는 새만금방조제를 넘어 부안 쪽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3층 건물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1층의 영상관에서는 20분 단위로 관련 3D 홍보영상을 볼 수 있다. 3층의 전망대로 올라가면 현재 진행 중인 새만금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분명히 바다였던 이곳은 지금 거대한 땅으로 변해 우리에게 광활함과 동시에 기록적인 역사를 선물하고 있다. 후에 두바이가 ‘아랍의 새만금’이라는 표현으로 바뀌는 날이 있을까. 바로 그 미래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 새만금홍보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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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유람, 선유도
선유도는 풀이대로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런 극적인 칭호를 한낱 자그마한 섬에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유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 무엇이든 급하지 않은 서해바다를 한 시간 여. 선유도에서 먼저 반겨준 것은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주봉으로 옛날 귀양살이를 온 신하가 매일같이 이곳에 올라 조정의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야트막한 바위산이다. 육지의 땅과 뚝 떨어진 섬이라는 곳에 도착하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앞 다투어 나선다. 모르고 지냈던 많은 감정들을 열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섬이 가진 미덕이고 그런 면에서 선유도는 아마 군산여행 막바지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한 대 빌릴까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어디서든 걷고 있노라면 자전거로 달릴 때 보다는 다른 냄새와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곤 했다. 선유도와 무녀도 그리고 장자도와 대장도 등 네 곳의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섬과 같아졌지만 그것은 생활권이나 육지 사람들의 잣대로 설명되는 것이지 각자의 섬은 또 각자의 섬대로 살아갈 뿐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은 덜한 장자도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먼저 해변을 따라 대장도의 장자봉에 오르기로 했다. 이름 모를 풀숲을 헤치고 작은 돌에 서걱거리며 정상에 올랐을 때 이곳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쪽빛의 짙푸른 바다 그리고 점점의 작은 섬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늘. 숲 안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듯이 섬을 보기 위해선 섬의 가장 맨 꼭대기로 올라야 할 것이다. 마침, 정상의 끝에 한 젊은 부부가 텐트를 친다. 빠른 솜씨로 텐트를 치던 부부는 이윽고 커피물을 끓이고 해가 넘어가려는 서쪽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그들이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앉아 있던 실루엣은 마치 커다란 보석처럼 보였다. 이제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장면들을 보아왔지만 무척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은 물욕과 현실은 사라지고 오롯하게 서쪽 바다와 둘만의 시간만이 남았으리라. 밤에는 밤바다의 별을 볼 그들. 부디, 신선이 되길.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 그것은 석양을 마주하는 시간이며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간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바쁜 걸음으로 내려와 선유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이 곱고 한적한 해변에 나와 모두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선셋이다. 이윽고 햇빛의 입자까지 보이던 맑은 하늘 뒤로 해가 낮게 잠기고 있었다. 하늘은 수 백 가지의 색으로 번져갔다. 그 속에는 분명 군산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선유도 지니고 있는 색들도 있었다. 조금 전의 과거와 내일이면 다시 태어날 미래가 정확하게 잠시 뒤로 물러나는 시간. 다소 역사적인 볼거리로 가득한 군산여행에서 선유도가 가지는 한 축은 군산을 전국 제1의 여행지로 꼽는데 주저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사이 절대적인 균형감. 바로 군산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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