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불펜의 상징과도 같았던 권오준은 세 번의 팔꿈치 수술과 재활, 부상의 터널을 거치면서 더 강하고 단단해졌다. 올해는 투수 권오준에게 마지막 기회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스포츠동아DB
“선물받은 팬북 펼쳐보면서 재활 이겨내
올시즌이 마지막 기회…다 보여주겠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남을 이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이기는 게 우선이죠.”
삼성 권오준(35)은 참 오랫동안 자신과 싸워 왔다. 그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만 세 번을 받은 투수다. 남들은 한 번도 거치기 힘든, 길고 고통스러운 재활의 터널을 세 번이나 무사히 통과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약해지던 그때, 그를 붙잡아준 건 팬들의 마음이었다. 권오준은 “여전히 ‘성적이 안 좋아도 좋으니 부디 아프지 말고 공을 던지기만 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팬들이 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뭉클하다”며 “지금까지 팬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권오준은 삼성 불펜의 힘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오승환과 ‘KO 펀치’를 이뤘고, 권혁과 ‘쌍권총’이 됐다. 그런 그가 끝없이 부상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팬들의 눈에 밟혔던 듯하다. 권오준은 “재작년 초에 세 번째 수술을 받고 삼성 STC에서 재활을 할 때 한 팬이 팬북을 만들어 주셨다. 내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사진들과 100명 정도의 팬들이 쓴 응원의 글들이 담겨 있었다”며 “무척 힘들던 시기였는데, 그 책을 보고 다시 이를 악물게 됐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라 가끔씩 펼쳐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수술과 재활을 무사히 마친 뒤에도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지난해 괌 전지훈련에서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당해 다시 한참을 쉬었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까 마음이 더 급해지는 것 같다. 재활을 끝내고 몸이 너무 좋다 보니 욕심이 나서 죽어라 훈련을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며 “몸이 안 되는데 운동은 해야 하고, 운동을 하면 아프니, 여유를 못 찾았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결국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딱 한 번 마운드에 오르면서 권오준의 2014시즌은 막을 내렸다. 그때 그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권오준은 지금 불펜 한 자리를 놓고 후배 사이드암 투수 심창민, 신용운과 경쟁하고 있다.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후유증은 말끔히 가셨다. 이제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비록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그는 도전해 볼 생각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쌓아 올려진 노련함이 최고의 무기다. 13일과 15일 일본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나란히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좋은 출발도 했다. 권오준은 “나도 이제 감독님께 나를 어필해야 하는 위치다. 한 달 반 동안 몸을 끌어 올려서 경기 때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할 것 같다”며 “내게는 올해가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다. 어릴 때 팀에 들어와서 ‘아, 이게 기회구나’ 할 때와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마운드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던 권오준은 여전히 강한 투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가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마운드에서 타자들 요리하는 재미로 야구를 했다. 요즘은 마운드에서 나의 밸런스, 나의 공을 생각하게 된다”며 “시범경기가 내게는 시즌 개막이라 생각하고 준비하겠다.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리니, 몸이 피곤해도 할 만 하다”고 웃어 보였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