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3) 넥센 박승민 투수코치의 우여곡절 스토리

입력 2016-12-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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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박승민 투수코치는 현역 시절 5차례나 수술을 받았고, 2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2군 선수들이 심리를 잘 아는 그는 “선수들이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덕목”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 넥센 히어로즈

2006년 짧게 휘는 슬라이더 하나로 리그를 평정했던 마무리투수. 주인공은 현역시절 박준수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던 넥센 박승민(39) 투수코치다. 은퇴 후 “이제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는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개명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선수 박준수가 코치 박승민으로 다시 태어난 뒤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 축구를 더 좋아했던 소년

강남초등학교 시절. 친형과 동네 친구들이 모두 야구를 했다. 축구를 더 좋아했지만, 다들 야구를 하다 보니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배트와 글러브를 잡았다. 처음에는 축구를 하고 싶어 야구 유니폼을 입고 도망 다니기도 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기 위해 테스트도 받았다. 문제는 야구 실력이 워낙 뛰어난 터라 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는 것이다. 강남중학교에 진학한 뒤 수업도 받지 못하고 야구만 해야 했다. 이 때부터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야구만 하다 보니 그만두고 나면 아무 것도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구를 잘해야만 한다고 마음먹은 시기예요.”

야구 명문 서울고에 입학한 뒤 야구가 더 재미있어졌다. 3학년 때는 동기였던 김선우, 서재응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 프로의 높은 벽, 그리고 좌절

1996년 신인드래프트 2차 9라운드(전체 67번)에 현대의 지명을 받았지만, 경희대 진학을 택했다. 실력을 가다듬고 프로 무대를 밟겠다는 꿈이 컸다. 그러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입학하자마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투수와 타자를 오갔다. 대회마다 포지션이 달랐다. “대학시절에는 야구를 정말 못 했다. 팀에서 존재감도 없어 프로에 입단할 때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이유다.” 2000년 현대 입단 당시 계약금은 2000만원이었다.

데뷔 첫해 1군 5경기에서 방어율 9.53의 처참한 성적만 남겼다. 2001년에는 허리 수술을 받았다. 2002년 2경기에 등판한 뒤 또 수술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어깨였다. “그때는 어깨 수술을 받으면 야구를 더 이상 못 한다는 분위기였다. 지금처럼 수술 후 1년 쉬면 괜찮아진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만큼 심각했다. 설상가상 2군 선수였던 박 코치에게 전담 트레이너가 붙어 재활을 도울 수도 없었다. 외부에서 스스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2004년 등판했던 1경기(1.1이닝)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듬해(2005년) 29경기에서 1승1패1홀드, 방어율 3.86을 기록하며 마침내 이름 석 자를 알렸다. 프로 데뷔 6년 만이었다.

박 코치는 지도자가 된 지금도 무명시절을 떠올리며 2군 선수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박 코치는 “선수들이 2군에서 던질 때의 마음가짐으로 1군에서도 자신 있게 던져야 한다. 심리적인 부분을 깨우쳐야 한다. 올 시즌 구원왕 김세현도 올해 기술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한층 성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넥센 박승민 투수코치.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짧은 슬라이더’의 의미

박 코치의 2005년은 ‘짧은 슬라이더’를 연마한 자체로 의미가 큰 시즌이었다. 이 슬라이더 하나로 2006시즌을 버텼다. 61경기에서 5승5패38세이브, 방어율 1.82(69.1이닝 14자책점)를 기록했고, 그해 현대는 정규시즌 2위(70승55패1무)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박 코치의 공이 컸다. 직구 최고구속이 140㎞에 불과했지만, 생각을 바꾸고 자신감을 찾은 그의 슬라이더는 엄청난 무기였다. 슬라이더를 앞세워 1군 데뷔 첫해 15승을 따낸 신인왕 신재영(넥센)도 “박 코치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타자가 18.44m의 거리에서 날아오는 공의 목적지를 선택하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공이 변하면 정타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짧은 슬라이더를 어떻게 더 강한 회전을 줘서 던질지 생각했다. 사이드암 투수가 각이 큰 변화구를 던지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갈 때 변화가 심하다. 3루쪽에서 던지면 포수가 포구하는 위치가 바깥쪽이더라도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는 한가운데를 지난다는 위험요소가 있다. 나는 공을 던질 때 3루쪽이 아닌 가운데나 1루쪽에서 홈플레이트의 바깥쪽을 지나간다고 믿고 던졌다. 2003년에 어깨 수술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다.”


● 1군 투수코치 첫해, 결과보다 목적의식 강조

2012시즌이 끝나고 KIA에서 은퇴할 때까지 166경기에 더 등판했다. 2006년과 같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꾸준히 버텼다. 이 기간에도 2차례 팔꿈치수술, 한 차례 어깨수술을 더 받았다. 프로 입단 후 무려 5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박 코치가 아프지 않고 온전히 뛴 시즌은 2006년뿐이다. 그래서 부상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선수들이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덕목이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년간은 불펜코치를 맡으며 투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개인의 성격과 성향,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를 기억했다가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불펜코치의 임무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2017시즌부터는 1군 투수코치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1군 투수코치는 불펜코치와 달리 부담이 큰 자리다. 박 코치는 “감독님과 투수코치가 바뀐다고 해서 팀의 색깔이나 방향까지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넥센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지난해와 올해 발전했으니, 내년에도 그만큼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결과보다는 목적의식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넥센 박승민 투수코치


▲생년월일=1977년 3월 18일

▲출신교=강남초~강남중~서울고~경희대

▲키·몸무게=186cm·88kg(우투우타)

▲프로선수 경력=현대(2000~2007년)~히어로즈(2008~2011년)~KIA(2012년)

▲프로통산 성적=264경기 17승18패44세이브29홀드, 방어율 3.13

▲지도자 경력=넥센 불펜코치(2014~2016년), 투수코치(현재)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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