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개봉해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은 영화 ‘박하사탕’이 18년 만에 관객들을 다시 만난다.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하는 것.
이를 기념해 영화 ‘박하사탕’의 주연 배우 설경구와 김여진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 24일 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열고 관객들을 만났다. 이날 현장은 설경구의 팬미팅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만큼 뜨거운 환호와 반응이 쏟아졌다.
‘박하사탕’은 마흔 살 김영호의 20년 세월을 7개의 중요한 시간과 공간으로 거슬러가는 작품으로 김영호의 20년 삶을 관통하는 1980년 5월 광주의 트라우마를 통해 역사의 상처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내밀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이창동 감독은 “1979년부터 1999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간다. 2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김영호라는 개인을 통해 20년을 살아온 한국인의 시간을 의인화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하사탕’은 설경구와 문소리의 첫 장편 주연작. 이와 관련해 설경구는 “출연을 쉽게 결정 못했다. 내가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칠 것 같았다. 주저한 작품이었다. 당시 문소리도 나도 이름도 없는 무명배우였다. 감독님이 큰 모험을 하신 것이다. 운 좋게 천운으로 캐스팅 됐다”고 밝혔다.
그는 “연기하면서 너무 괴로웠다. 챕터마다 다른 인물 같아서 고통 속에 너무 어려운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촬영 전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촬영 할 때는 감독님 뒤로 다녔다. 인사하기도, 눈 마주치기도 싫을 정도로 불편했다”면서 “챕터 5 정도 때 감독님께 사과했다. ‘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 밖에 안 되어서 죄송하다. 감독님은 더 큰 것을 원할 텐데 나는 이것 밖에 안 된다. 이게 최선이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정도로 나에게는 힘들었던 영화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후 내 대표작을 질문받을 때 항상 ‘박하사탕’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박하사탕’이고 앞으로도 ‘박하사탕’일 것이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창동 감독은 마이크를 들더니 “왜 사과한 것만 말하고 내 말은 안 하느냐”면서 “설경구에게 ‘너만 의지하고 너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라고 했다. 단순히 용기를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실제로 내 마음이 그랬다”고 회상했다. 그는 “설경구를 보면서 영호가 걸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경험이 많지 않아서 힘들어했지만 한 장면 한 장면에 영호의 모습을 보여줘서 놀라웠다. 다만 ‘참 잘 한다’는 말은 안 했다. 개인적인 연출론인데 배우는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에 자기를 맞추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경구라는 미지의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싶었다”며 “설경구를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극 중 홍자를 연기한 김여진은 이창동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 캐스팅됐다고. 그는 “감독님이 캐스팅을 망설였다. ‘내가 캐릭터를 안다.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내 힘으로 힘껏 노력해서 따냈다”면서 “그런데 첫 장면 촬영 때 NG가 10번 정도 났다. 감독님 마음에 안 드신 것 같다. 그때부터 한 신 한 신 힘들게 갔다”고 털어놨다. 김여진은 “‘박하사탕’이 나에게도 주저 없이 대표작이고 애정이 있는 작품이다. 정말 허투루 할 수 없던 작품이다. 부끄럽지만 그만큼 고민한 경우는 드물었지 않나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박하사탕’의 촬영 비하인드가 공개되기도 했다. 설경구는 “챕터7부터 찍고 싶었는데 챕터 순서대로 찍었다. 챕터7에서는 20년 전 모습인데 오히려 더 늙어버렸다. ‘주름이 더 늘었다’고 감독님이 ‘큰일 났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창동 감독은 “4개월 강행군을 하는 사이 이미 피로에 치져 늙어버린 설경구를 보면서 ‘주름을 어떡하냐. 다리미로 다릴까?’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한 배우라 농담을 던져도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더라. 차마 말을 못했다”고 회상했다.
김여진은 노출 장면에 대해 “그때의 몸을 보기 부끄러워서 오늘 볼 자신이 없더라. 두 노출 신 사이에 시간 차가 있으니 몸에서 세월의 흐름을 보여줘야 했는데 큰 차이가 없었다. 설경구라면 한 달안에 10kg도 뺐을 텐데 나는 못 해서 그게 아쉽다”고 털어놨다.
이창동 감독은 “여배우의 노출은 정말 신경 쓰이는 일이고 배우에게는 큰 부담이고 도전이다. 그 장면은 홍자가 20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슷한 것을 다시 경험하는 아이러니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출해야 했다”면서 “노출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여진이 항의나 신경 쓰이게 하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여배우를 만나기 쉽지 않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로 회자되는 철로 위 장면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이창동 감독은 “2-3m 정도의 높이라 뛰어내려도 안 다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설경구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걱정되어서 스태프에게 밑을 붙들고 있으라고 했다. 설경구가 누가 밑에 있는지도 인식 못할 정도로 몰입했더라. 그 순간 내 눈 앞에서 말로만 듣던 ‘내면 연기’를 처음 보는 느낌을 받았다. 전율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설경구를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 그가 ‘박하사탕’에 걸어들어온 것은 내 운명이기도 했고 한국 영화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만큼 충무로에 특별한 배우”라는 극찬으로 마무리했다.
설경구는 행사 도중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박하사탕’ 이야기를 하면 내가 그렇게 운다. 박하사탕의 여운이 꽤 오래 갔다. 나에게 아직도 강하게 각인된 영화. 지금 말하면서도 울컥한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의 영원한 인생작 ‘박하사탕’은 26일 재개봉한다.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