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⑨ 조용형] 난 머리쓰는 꾀돌이 2002년 홍명보처럼 든든한 뒷문 걱정마!

입력 2010-06-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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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수비 맡겨만 다오”
스페인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3일(한국시간) 인스부르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조용형이 몸을 던져 헤딩 연습을 하고 있다.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연합뉴스

■ ‘수비는 힘보다 머리다’ 꾀돌이!
영리한 플레이로 최후방 수비실수 줄여
MF서 DF 변신 거듭…멀티포지션 장



■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악바리!

부평고시절 선배기합에 동료들 팀이탈
‘도망칠 이유가 없다’ 묵묵히 숙소 지켜


■ ‘프로는 몸이 재산이다’ 성실맨!
초교부터 10여년간 꼬박꼬박 훈련일지
작년 부상 2개월만에 부활 동료도 놀라


‘오늘은 예전보다 몸이 좋은 편이었다. 항상 이런 몸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몸이 재산이다.’

조용형(27·제주 유나이티드)이 쓴 2004년 3월24일 수요일의 일기 가운데 일부다. 고려대 재학시절 적은 이 일기 위에는 그날의 훈련 내용이 번호까지 매겨져 꼼꼼하게 적혀있다. 조용형은 축구화를 처음 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단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일지를 써왔다.

인천시 남동구구 만수동 그의 집에는 각종 대회에서 탄 메달과 함께 훈련일지 수 십 권이 빼곡히 쌓여있다.


● “머리로 공을 차는 영리한 선수”

조용형은 대표팀 가운데서도 말수 적고 묵묵한 선수로 통한다.

문전을 지키는 중앙수비수라는 포지션 탓도 있지만 타고난 천성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부평동중학교 시절 그를 지도한 신호철 감독은 “늘 변함이 없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인생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조용형도 그랬다. 입학했던 인천 간석초등학교가 주변 도로 공사로 인근 만수북초등학교로 편입되면서다.

옮겨 간 학교에서 열린 첫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던 조용형을 그 학교 축구부 감독이 발견했다. 그 날부터 감독은 조용형의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하던 조용형은 이미 축구에 마음을 빼앗겼다.

부모는 막내아들을 걱정했다.

어머니 곽미경(55) 씨는 아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보습학원에 등록시켰다. 이미 축구에 홀린 아들은 학원에 빠지기 일쑤였다.

아버지 조태식(57) 씨는 운동장에서 본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아들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상의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축구부 형의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더 이상 반대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초등학교 때 미드필더였던 조용형은 부평동중에 진학하며 포지션을 수비수로 바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를 처음 본 신호철 감독의 결정이었다. 중앙 수비수로 성장해 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도자로 신 감독을 첫 손에 꼽는다.

“중학생과 연습 게임을 하면 초등학생이 힘에서 밀리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용형이는 머리로 공을 차고 있다는 걸 알았죠. 영리했어요. 입학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꿨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중앙 수비를 맡았어요. 다양한 포지션 경험이 월드컵에서도 도움이 될 거예요.”(신호철 감독)


● 초·중·고 시절 주장 도맡아

부평동중 시절 조용형은 선배 김정우(광주 상무), 이천수와 함께 뛰었다. 부평고에 가서도 최태욱, 이천수, 박용호 등 10대 스타 플레이어들과 한솥밥을 먹었다. 중·고교 시절 이미 ‘별들의 전쟁’ 속에서 성장한 셈. 그러면서도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때까지 주장을 도맡아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지금도 시즌이 끝나면 모교를 찾아 후배들을 챙긴다. 지난해에는 부평동중 축구부의 유니폼도 맞춰줬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남몰래 돕는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 아버지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부평동중을 찾아 축구부를 직접 챙기고 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하는 고된 훈련과 승부에 대한 압박을 견뎌야 하는 선수들은 한 번 쯤 방황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용형은 누구나 거치는 사춘기 때도 묵묵했다. 조태식 씨는 “운동을 하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기 싫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스스로 이겨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부평고 2학년 때다.

당시만 해도 관례처럼 행해졌던 선배들의 기합을 받고, 후배들이 모두 숙소를 이탈했다. 축구부는 발칵 뒤집혔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그는 홀로 숙소에 남았다. 그 때 그는 “왜 도망가야 하는 지 이유를 몰라 숙소에 남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곽미경 씨는 “내 아들이지만 정말 독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며 웃었다.

지난달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조용형.스포츠동아DB




● 생애 첫 월드컵… “성실하게 만 해다오”

조용형은 고려대 2학년 때인 2005년,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2002년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밀려 이듬해 가까스로 대학에 갔고, 이어 어렵게 프로까지 진출하자 부모는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냉혹했다.

주전경쟁은 한 층 치열했고 수비수의 실수는 곧 패배로 이어졌다.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도 가볍지 않았다. 2007년부터 1년 간 성남일화에서 뛰며 포지션이 중앙수비수에서 사이드로 바뀌었을 때는 조용형은 물론 부모의 마음고생도 심했다.

한 번은 수원과의 경기에서 조용형의 실수로 2-4로 팀이 패하자 그는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에게 “제가 감독이라도 저를 쓰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들의 이 말은 조태식 씨의 가슴 속에 지금도 남아있다.

2008년 1월30일 칠레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태극마크를 처음 단 조용형은 이제 생애 첫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그가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만큼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다.

“대표팀에서 뛴다고 마냥 기쁠 수는 없어요. 다치지 않을까, 혹시 실수를 해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죠. 어릴 때부터 용형이에게 언제나 성실하게, 어긋나지 않게 살라고 가르쳤어요. 월드컵에서도 그렇게만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조태식 씨)


● ‘제2의 홍명보’ 조용형 성장앨범

조용형은 100일 때 몸무게가 10kg에 달할 정도로 우량아였다. 귀엽게 웃고 있는 조용형의 돌 사진.

부평고 시절부터 조용형은 중앙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에 진출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는 조용형의 훈련 일지.




● 조용형 프로필


생년월일=
1983년 11월3일

출생지= 인천

출신교= 인천 만수북초∼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

신체조건= 183cm,71kg

혈액형= A형

포지션= DF

프로경력= 부천 SK(2005∼2006)∼성남 일화(2007∼2008)∼제주 유나이티드(2009∼)

대표팀 데뷔= 2008년 1월30일 칠레 친선경기

대표팀 경력= 2010년 동아시아선수권 최우수수비상

A매치 경력= 31경기 출전 월드컵 출전 경험=무

인천|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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