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The Fan] 야구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징크스

입력 2010-12-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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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Jinx). 재수 없는 현상에 대한 인과 관계적 믿음. 말도 안 되는 헛생각이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그 인과관계를 몇 차례 경험하고 난 이들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불길한 징후.

누구나 크고 작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야구팬의 징크스는 유난하며 각양각색이다. ‘내가 직관(야구장에서 직접 관람)을 가면 그날은 꼭 지더라’,‘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가면 역전패 하더라’는 징크스는 꽤 보편적이고, 이 외에도 손톱을 깎은 날에는 진다거나 택시를 타고 가면 진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징크스도 있다.

나 역시도 해를 거듭할수록 징크스가 점점 늘어 간다. 상대팀의 응원가를 나도 모르는 사이 흥얼거리면 우리 팀의 야수가 실책을 하는 징크스 탓에, 멋진 응원가를 자랑하는 롯데·두산·LG와의 경기를 볼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중계방송을 보는 중에 전화 또는 방문을 받으면 큰 것 한방을 맞는 징크스도 있어서, 야구 하는 동안에는 전화기와 인터폰을 모두 꺼 놓는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한화의 2010년 승률이 4할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허무하다 못해 원통할 지경이다.

우리 아버지의 징크스 또한 독특하다. 아버지는 위기가 닥치면 리모콘을 들어 TV 쪽을 향하게 하고 꼼짝도 안하시는 징크스가 있다. 언젠가 무사만루의 위기가 왔을 때, 여차하는 순간 채널을 돌려버리려고 그런 자세를 취했는데 거짓말처럼 무실점으로 막더란다.

그 이후로 실점 위기가 오면 여지없이 리모콘을 들고 팔을 부들부들 떠시는데 “내가 이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냐”하고 푸념하면서도 꼼짝없이 버티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시다 싶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대관절 응원가가, 전화와 리모콘이, 선수들의 경기력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내가 봐서, 내가 그 순간에 그런 일을 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지는 날 우연히 내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뿐이며, 내 징크스가 자꾸 늘어나는 것 또한 우리 팀의 지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많은 팬들이 징크스에 매달리는 건, 승리를 위해 팬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결코 이 경기를 지배할 수 없음을 알지만 승리가 내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설령 헛일이 될지라도 뭔가를 하며 위안받고 싶은 심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징크스란, 좋지 못한 우연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선수와 팀에 대한 신념일지도 모르겠다. 허무맹랑하면 또 어떠랴. 금기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며 수많은 징크스에 얽매이는 것도 야구에 있어 가장 힘든 포지션, 야구팬의 즐거움 중 하나이니 말이다.


구율화 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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