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당당히 빚 청산…역시 ‘후라이보이’

입력 2011-03-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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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시작한 TBC(동양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쇼쇼쇼’ 등 각종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명성을 떨쳤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스포츠동아DB

1974년 곽규석, 사업 부도내고 해외도피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후라이보이 곽규석입니다!”

1964년 시작한 TBC(동양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쇼쇼쇼’의 오프닝 멘트다. 진행자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경쾌한 인사말은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곽규석은 ‘원맨쇼’의 개척자이자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다. 그런 그가 1970년대 초반 사업에 실패해 인생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1974년 오늘,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던 곽규석이 미국행을 목적으로 일본 도쿄를 경유해 출국했다. 그는 1971년 광고대행사를 맡아 한때 모 스타킹 광고로 번성한 사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당시 찾아온 오일쇼크와 부족한 사업경험, 바쁜 연예활동 탓에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거액의 빚을 남긴 채 출국했다.

이 때문에 그가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11일 뒤인 3월29일 귀국해 “평생이라도 빚을 갚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후 다시 연예활동에 복귀해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서울대 음대 출신인 곽규석은 공군 시절 ‘후라이보이 스윙밴드’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자신의 별칭인 ‘후라이보이’를 내세웠다. 미군 파일럿을 ‘후라이보이’로 불렀지만 ‘후라이’는 거짓말이란 의미의 은어이기도 했다. 그는 ‘솔직해지자’는 의미로 이를 별칭으로 삼았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은 “순간을 놓치면 웃음은 되찾지 못하는 것이다. 코미디는 순간의 연속이다”는 신념으로 재치있는 유머와 감각으로 스탠드업 개그를 선보인 ‘원맨쇼’의 개척자였다. 드라마 작가 한운사는 그를 두고 “박식하다”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사람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곽규석은 1986년 미국에서 목회자로 변신해 살아가다 1999년 8월31일 미국에서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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