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인터뷰] 나상욱 “한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한다”

입력 2012-02-07 13: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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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나상욱. 동아닷컴 DB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를 강타한 ‘코리언 돌풍’이 최근 미국남자프로골프투어(이하 PGA)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고참인 최경주(42·SK텔레콤)와 양용은(40·KB금융그룹)이 돌풍을 이끌고 있고 노승열(21·타이틀리스트), 배상문(26·캘러웨이) 등 젊은 선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또 나상욱(29·타이틀리스트), 존 허(22) 등 재미교포 선수들까지 가세, 10명이 넘는 한국인 선수들이 PGA를 정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상욱(미국명 : 케빈 나)의 최근 행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상욱은 지난해 8월 이후 한 단계 올라선 모습이다.

8월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리더니 10월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오픈’에서 211번의 도전 만에 데뷔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어 열린 ‘프라이스닷컴 오픈’에서도 15위에 올랐다.

2012년에도 나상욱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시즌 첫 대회인 ‘현대 토너먼트 오프 챔피언스’에서 12위를 차지했고, 지난주 끝난 ‘웨이스트 피닉스 오픈’에서도 5위에 오르며 시즌 첫 ‘톱10’에 성공했다.

데뷔 후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나상욱을 피닉스 오픈이 끝난 뒤 만났다. 그의 속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나상욱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10월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을 따냈다. 어떤 기분이었나.
: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우승이었다. 오래도록 우승을 기다리다 보니 ‘나는 언제쯤 우승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까지 있었다. 기다렸던 우승을 하고 나니 그간 가슴에 맺혀있던 우승에 대한 갈증이 한 번에 뻥하고 시원하게 뚫린 기분이었다. 우승 후 처음 2주 동안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기뻤고 몸도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우승 후 PGA에서의 위상이 달라졌을 텐데.
: 우선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 예를 들면 시합 때 배정받는 티 타임도 좋아졌고 각종 공식석상에서 나를 언급할 때 ‘PGA 우승자’라고 소개한다. 우승을 하고 나니 사람들이 왜 우승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듯했다. 빨리 또 우승하고 싶다(하하).

-2010년부터 성직이 부쩍 좋아졌다. 성적이 갑자기 좋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 3년 전부터 성적이 좋아졌다. 좋아진 이유라면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PGA경험이 늘다 보니 경험에서 오는 노련미라고 할까?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을 풀어가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다. 경험과 더불어 체계적인 몸 관리도 좋은 성적에 한 몫 한 것 같다.

-올 시즌은 처음부터 성적이 아주 좋다. 이번 시즌 본인의 목표가 있다면?
: PGA 투어 2승을 목표로 하고 있고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작년 마스터즈 대회에서 호주 출신인 데어 린치라는 코치를 만나 그에게 틈틈이 레슨을 받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올해 풀 타임 코치로 계약했다. 코치를 바꾼 후 생긴 스윙의 변화가 자신감으로 이어져 올해는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우승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부상도 꽤 있었다. 부상과 우승 없이 지낸 시간이 힘들지 않았나?
: 우승 없이 무명으로 지낸 것보다 부상으로 보낸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부상을 당했을 때 ‘골프도 부상 때문에 이렇게 끝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또 부상 후 새로 골프장에 나섰을 때 잃었던 감을 찾는 게 어려웠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아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부상을 통해 몸 관리의 중요성과 골프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첫 우승 전까지 준우승만 세 번을 기록했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물러났을 때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 2등을 안 해본 사람은 절대 그 기분을 모를 것이다. 눈물도 나고 괴롭고 바로 코 앞에서 날아간 우승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우울증까지 느낄 정도였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괴로웠다.

-본인이 생각하는 ‘나상욱’의 가장 큰 장점은?
: 꾸준한 노력이라고 본다. 항상 노력하며 몸 관리와 사생활 관리에 충실한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그럼, 반대로 본인에게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 지나간 게임이나 플레이에 연연하지 않는, 지나간 일은 털어내고 갈 수 있는 소탈하고 시원한 성격이 필요한 것 같다.

-나상욱의 쇼트게임은 완벽에 가깝다. ‘쇼트게임의 달인’이다.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쇼트게임을 잘할 수 있는 팁을 전해준다면?
: 아무래도 연습이 제일 중요하다. 거기에 한 가지 추가하자면 아마추어 분들이 한 가지 샷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샷을 구사할 수 있는 기술적인 면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손목을 감았다 부드럽게 푸는 ‘코킹’ 연습이 필요하다.

-배상문 등 젊은 한국선수들이 PGA 투어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 앞으로 점점 더 많아 질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만 봐도 한국출신 선수가 나를 포함 대략 11명 정도 된다. 그간 PGA 투어에서 호주 출신 선수들이 많이 활약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한국 출신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며 활약할 것이라고 본다.

-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중 최고인 최경주는 나상욱에게 어떤 존재인가?
: 우선 최경주 프로는 우리 한국인도 PGA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개척자 같은 분이다. 후배들의 앞 길을 열어주신 선구자 같은 분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또 내가 프로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최경주 프로가 달성한 8승을 넘어 10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워야겠다 라고 목표의식을 심어주시기도 한 고마운 분이다.

-모든 프로 선수들에게 메이저대회 우승은 큰 꿈이다. 그 시기가 언제쯤일 것 같나?
: 기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내 드라이브 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윙코치를 바꾸게 되었는데 코치를 바꾼 뒤 드라이브 스윙과 비거리가 좋아졌다. 작년에 메이저대회 첫 톱10에 진입한 후 ‘메이저대회 우승도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올해 큰 일을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도 되는가.
: (웃으며) 음… 우승을 할 수 있다라고 약속은 못하지만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오리라 본다.

-일부에서 나상욱의 플레이가 많이 느리다는 지적이 있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웃으며) 그렇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게 내 스타일이다 보니 하루 아침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빨리 치려다 오히려 게임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 ‘신중하게 플레이 하라’고 배웠고 그게 내 스타일로 굳어졌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고쳐나갈 생각이다.

-얼마 전 한국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 출연했다. 방송 출연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 방송 출연 전에는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알아봐 주셨는데 ‘세바퀴’ 출연 후 골프와 상관없는 젊은 분들까지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방송 출연은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이었고 재미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출연하고 싶다. 재미있었다.

-한국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걸로 알고 있다. 결혼은 언제쯤 생각하고 있는가?
: 결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언제라는 시기를 정하기 보다는 진정한 내 반쪽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나보다 3살 많은 형이 아직 미혼이라 언제라는 시기는 정해두지 않았다.

-나상욱에게 골프란 어떤 의미인가.
: 골프는 ‘내 인생’이라고 본다. 아울러, 인생이란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골프가 스트레스가 따르는 운동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재미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시니어 투어도 뛸 생각이다.

-한국에서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 먼저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간혹 내가 재미교포라는 이유로 차별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자랑스런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디에 가든지 한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한다. 사는 곳이 어디냐를 두고 차별하지 마시고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참고로 나상욱은 서울에서 태어나 8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다.

피닉스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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