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지태 감독 “진지하고 재미없다고? 알고 보면 어리숙한 청년”

입력 2013-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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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감독은 “요즘 아내 김효진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미안해 설거지와 요리를 가끔 해준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유지태 감독은 “요즘 아내 김효진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미안해 설거지와 요리를 가끔 해준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제가 진지하고 재미가 없나요? 안 그렇죠? 하하"

어디선가 진지하고 재미없다는 소식을 들었나보다. 걱정이 된 걸까. 유지태(34)는 "평소에는 어리숙하고 수더분하고 좋은 연기자와 감독이 되고픈 꿈을 간직한 한 청년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설명한다. 하지만 진지하다는 평가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깊이 있는 그의 말과 영화를 향한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가 그의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마이 라띠마'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불법 체류를 하게 된 '마이 라띠마'(박지수)와 세상이 등돌린 남자 '수영'의 지독한 현실과 고독한 사랑을 그렸다. 이번 영화는 유지태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유지태의 세세하고 치밀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관심도 눈길을 끈다. 그는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 이주노동자에 관한 자료를 보며 이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평소 '내가 왜 영화를 찍어야 할까'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영화를 찍는 동기부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관심사였던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죠. '마이 라띠마'가 늘 당하고 피해자가 되는 모습으로 남기고 싶진 않았어요. 구경미 작가의 '라오라오가 좋아'를 읽으면서 자아를 찾고 스스로 선택해 삶을 사는 여성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유지태의 첫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단편 영화는 촬영한 적이 있지만 장편 영화를 찍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화를 제작해주겠다는 사람은 3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고 시나리오를 전달한 배우에게도 답변이 없었다. 박탈감과 상실감 그리고 모멸감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이유로 투자 받기도 어려웠다. '이렇게까지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되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기다림이 빛을 발한 걸까. 이후 시나리오를 본 배수빈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해 참여하게 됐고 신예 박지수는 오디션을 통해 발굴했다. 어렵게 투자도 받게 됐다. 제작은 직접했다.

"배수빈 씨가 하겠다고 했을 때 '아, 그래요?' 하는 동시에 어떻게 영화를 만들것인지 머리에서 맴돌더라고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나 아벨페라라의 '배드 캅' 이 생각났어요.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아직 덜 성장한 어른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머리를 쥐어짜며 각색할 땐 정말 힘들더라고요."

유지태 감독.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유지태 감독.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그의 관심사를 향한 따뜻한 시선은 스크린 안에서만 표현된 것은 아니다. 유지태는 자신의 영화를 함께 만들어낸 스태프의 처우도 특별히 신경썼다. 이번 영화의 제작비는 총 3억 원.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영화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유지태는 자신의 기획개발비, 감독개런티를 포기했고 배우를 하며 하나둘씩 구매했던 자신의 영화 촬영 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일종의 손해를 보며 영화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그는 스태프 개런티 만큼은 철저하고 정확하게 제공했다.



"영화 산업적으로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이 스태프 처우예요. 그러기에 배우와 감독 뿐 아니라 스태프 표준계약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모든 스태프가 개별로 계약을 해야하고요. (보통 팀별 계약을 함) 게다가 막내부터 인턴까지 모두 작품에 대한 인센티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처우가 안 좋다보니 다들 영화를 하다가도 다른 일을 찾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요. 그래서 '마이 라띠마' 팀들은 제가 생각했던 제작시스템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어요."

또한 촬영현장에서는 화 한번 내지 않았고 배우가 심적으로 부담되는 장면은 되도록 찍지 않으려 했다. 유지태는 "내 꿈을 이루는 동반자들인데 화를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화를 낼 상황도 없었지만 화를 내면 배우가 기분이 나쁘고 연기를 더 잘 할 수 없어요. 그러면 저 역시 제가 원하는 장면을 담을 수 없어요. 그리고 배우가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임산부가 된 라띠마가 배를 보이는 장면은 라텍스로 배를 만들었고요. 베드신은 철저히 영화에 필요한 선까지 지키겠다고 약속했죠."

특히 유지태는 신예 박지수에게 좋은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모델 출신 배우'라는 편견때문에 힘든 데뷔를 치렀던 유지태는 후배 박지수가 배우로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모델 출신 연기자'하면 얼굴은 괜찮지만 연기는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촬영 현장에서 텃세도 많으니 트라우마도 생기더라고요. 내가 하는 말은 깊이가 없어보이는 난처한 상황도 있었고요. (박)지수에게 그런 경험은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좋은 선배 만난 거 알려나? (웃음)"

감독으로서 첫 장편영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지태는 다시 배우로서 관객들을 찾는다. 유지태는 올해 하반기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에서 천재 테너 역할을 맡는다. 8개의 아리아를 외웠다는 유지태는 배우로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저는 영화를 만들고 연기를 하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배우, 또한 큰 예산을 움직일 수 있는 자기 색을 가진 감독 그리고 사회 공헌 사업을 하며 약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삶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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