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희 이숙자 정지윤 세터 3명의 배구인생

입력 2014-03-31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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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NH농협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은 3명의 세터가 벌이는 대결이 흥미롭다.

1980년생인 34세 베테랑 이효희(IBK기업은행)와 정지윤, 이숙자(이상 GS칼텍스)가 봄 배구에 만났다. 20년 가까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우정을 나누며 기량을 겨루던 동기들이다.

이효희는 수원한일전산여고 출신이고 이숙자는 은혜여고, 정지윤은 제천여고를 나왔다. 고교시절에는 이숙자가 앞섰다. 청소년대표 주전세터였다. 1999년 고교졸업반 때 이효희는 KT&G, 이숙자는 현대건설, 정지윤은 흥국생명에 선택받아 실업배구 생활을 시작했다.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한 성인배구의 출발

이숙자는 선배의 그늘이 너무 깊었다. 명 세터 강혜미가 은퇴할 때인 2004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효희는 그보다 먼저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5년 V리그 출범 때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도로공사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이기며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이효희가 가진 3개의 우승반지 가운데 첫 번째다. 상대는 김사니였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정지윤이었다. 당시 흥국생명은 선수들끼리 갈등이 심했다. 정지윤은 그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구단은 한쪽 라인 선수들을 모두 내치는 결정을 내렸다.

정지윤은 임의탈퇴 선수가 됐지만 2005~2006시즌을 앞두고 GS 유니폼을 입었다. 사연이 있었다. 2005~2006 신인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과 GS가 김연경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했다. 두 팀이 맞대결을 벌여 꼴찌를 가렸다. 매스컴의 비난 속에 져주기 경기가 벌어졌다. GS의 박삼용 감독이 마음을 돌렸고 흥국생명이 김연경을 차지했다. 흥국생명은 보상 차원에서 정지윤을 GS에 넘겨줬다.



정지윤과 GS의 인연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7~2008시즌을 앞두고 여자부에 처음으로 FA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현대건설에서 뛰던 이숙자가 정대영과 함께 GS에 왔다. 한 팀에 같은 나이의 주전세터 2명은 필요 없었다. 정지윤은 실업팀 수원시청으로 밀려났다.


●상처 속에서 인간은 성숙한다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우승을 경험했던 이효희도 FA로 상처를 받았다. 첫 FA제도 도입 때 도로공사의 김사니가 KT&G로 밀고 들어왔다. 이영주가 은퇴해 세터자리에 공백이 생긴 덕분에 흥국생명 유니폼으로 바꿔 입었다.

2007~2008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은 흥국생명과 GS의 경기였다. 이숙자와 이효희가 대결했다. GS가 첫 경기 패배 뒤 3연승을 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음 시즌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이효희가 이겼다. 똑같이 첫 경기 패배 뒤 3연승의 우승이었다.

2번째 우승반지를 낀 이효희는 2010~2011시즌을 앞두고 또 한 번 김사니에 밀려 은퇴했지만 7개월을 쉰 뒤 신생팀 기업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2012~2013시즌 이효희와 이숙자는 3번째 챔피언결정전 대결을 벌였다. 이효희가 또 이겼다.

프로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정지윤은 수원시청을 거쳐 양산시청에서 실업배구 연속우승의 신화를 썼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GS에서 컴백을 요청했다. 2013년 7월 코보컵 대회를 앞두고 훈련하다 이숙자가 아킬레스건을 다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나연이 갑자기 팀을 이탈하면서 세터에 공백이 생겼다. 이선구 감독은 정지윤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정지윤은 다시 GS 유니폼을 입었다. 이번 시즌은 정지윤이 주전이고 이숙자는 기나긴 재활을 마친 뒤 보조세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지윤은 실업배구에서 갈고닦은 기량이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명 가운데 아직 유일하게 우승 반지가 없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는 이유다. 기혼자 이숙자는 챔프전 뒤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출산을 위해서다. 또 다른 기혼자 정지윤은 다시 양산시청으로 돌아가 전국체전에 출전한다. GS로 컴백할 때 팀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이후의 앞길은 아직 미정이다. 프로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도 실업배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미혼인 이효희는 시즌 뒤 FA계약을 눈앞에 뒀다. 이번에는 FA의 희생자가 아닌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3명 여고친구의 돌고 도는 배구인생은 어떤 결말을 만들까.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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