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바둑의 세계와 범죄액션물이 만나 관객들에게 쾌감을 전하는 ‘신의 한 수’는 정우성, 이범수 등 날 선 남자들의 멋진 액션도 볼거리지만 화려한 머리캐스팅도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이범수, 안성기, 안길강, 김인권, 최진혁, 이시영 등 한국영화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모두 모았다. 이와 같은 라인업이라면 우선 작품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캐릭터들이 들쑥날쑥해져 ‘패착’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범구 감독은 ‘배우’라는 ‘바둑 돌’을 아주 잘 놓은 듯하다. 적절한 배치였다. 태석(정우성)과 살수(이범수)가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돌이라면, 주변에 있는 주님(안성기), 꽁수(김인권), 허목수(안길강), 배꼽(이시영) 등은 이들을 보좌하며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지키고 있다. 누구하나 튀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뛰어난 연출력 아래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바둑’이라는 낯선 소재를 갖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든 ‘신의 한 수’는 현재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흥행순항을 하고 있다. 막강 로봇 ‘트랜스포머’와의 경쟁에서도 꿀리지 않은 화려한 성적표는 주춤했던 한국영화의 기를 세워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들이 마침내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도의 두뇌싸움을 요구하는 ‘정’적인 바둑과 피와 땀이 묻어나는 ‘동’적인 액션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관객들에게 액션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우성은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해 재빠른 몸짓으로 통쾌한 액션 쾌감을 선보인다. ‘잘 생김’을 연기하는 정우성은 다소 잔인할 수 있는 액션마저 섹시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지막 살수와의 대결에서는 날 선 남자들의 대결에서 온 몸을 스피디하게 찌르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또한 흰색 수트의 정우성과 검은색 수트의 이범수가 마치 바둑판의 바둑돌이 되어 움직이는 듯 흥미진진한 대결을 펼친다. 이 외에도 ‘냉동근육’으로 화제를 모았던 최진혁과의 대결은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바둑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상영시간 118분이 지겹지 않다. 영화는 ‘패착’(지게 되는 나쁜 수), ‘착수’(바둑판에 돌을 놓다), ‘포석’(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행마’(조화를 이루어 세력을 펴다), ‘사활’(삶과 죽음의 갈림길) 등 바둑용어를 풀이해 놓은 챕터별로 구성돼있어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 또한 우리가 평소 접하지 못했던 ‘맹기’나 ‘계가’ 등 바둑판의 상황이 배우들의 대사에 묻어나 영화를 보는데 어려움은 없다. 청소년 관람불가. 118분.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