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강욱, ‘가늘고 길게’ 살 뻔했던 그에게 손 내민 ‘배우’라는 인연

입력 2015-10-19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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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강욱에게 어렸을 적 꿈을 물어보니 “하늘을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며 “이제는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게 꿈이 됐다”라며 배우의 길을 계속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회’라는 것이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다. 잡느냐 마느냐는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배우 이강욱은 그 기회를 잡았다. 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응원 동아리, 영어 동아리 등 수많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중 잘 모르는 고등학교 동창과 메신저로 연락을 하게 됐다. ‘우리 동아리에서 단원을 뽑는데 들어오지 않을래?’라는 메시지 하나에 ‘취미로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연기에 손을 뻗게 됐다.

“연극 동아리를 소개시켜 준 당사자는 정작 연습에 잘 안 나왔어요. 그래서 얼굴을 잘 몰라요. (웃음)저도 잘 모르는 친구인데…어떻게 그렇게 연락이 된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요? 절대 아니에요~~.”

어렸을 적, 배우를 꿈꾸던 사촌 형이 있었지만 이모부와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포기했다. 다년간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는 “우리 반에 연기한다고 했던 애들도 있었지만 배우 된 걸 본 적이 없다”고 냉혹하게 반대하셨고 그의 모습을 본 이강욱 역시 ‘배우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 줄곧 생각했다.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던 그가 우연치 않게 연극 동아리에 가게 되면서 배우를 꿈꾸게 될 줄이야. 그는 “나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더 해보고 싶기도 했고, 내가 계속 (연기를)할 만한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휴학 중에 단편영화 캐스팅도 찾아보고 대학로에서 오디션을 보고 다녔죠. 그러다 만난 ‘해피투게더’라는 작품을 세 달간을 공연하다가 군대에 들어갔어요. 복학 후 다시 작품을 찾았고요. 여기저기 다니다가 한예종에서 외부 배우를 섭외한다는 소식을 듣곤 오디션을 봤죠.”

그 후 한예종 작품을 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반(半)예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시간이지나고 어느 덧 20대 후반이 된 그는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을 먹은 뒤 우선 함께 진로와 비전을 함께 할 동료들을 찾아 극단을 꾸렸다.

배우 이강욱.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이강욱은 “프로젝트로 단위로 하니 깊은 이야기를 못 나눈 게 아쉬웠다. 극단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동년배들과 같이 진로와 미래를 만들어서 키워나가고 싶었다”며 “극단 ‘아어’를 차렸다. 올해는 짧게 공연도 가졌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올해 이강욱과 또 다른 연을 맺은 것은 뮤지컬 ‘무한동력’(연출 박희순)이다. 그가 ‘무한동력’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 ‘무한동력’ 쇼케이스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그 곳에서 ‘가늘고 길게’, ‘혼수상태’ 등을 재미있게 불렀을 뿐인데 공연이 올라가기로 결정되면서 갑작스레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뮤지컬이란 장르에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관심거리는 ‘연극’은 ‘매체 연기’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연극을 하려고 했다”는 이강욱은 “이지혜 작곡가님과 쇼케이스 때 친하게 된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뮤지컬로 진출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올해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고. 배우의 길을 가면서 노래와 함께 하는 배우들이 좋아 보였어요. 그 배우들을 소장하고 싶을 만큼? (웃음) 평소에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는데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노래로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에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저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노래는 잘 못하지만 기왕이면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었어요. 나이가 들면 더 못 배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무한동력’으로 초석을 다지게 된 거예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강욱이 맡은 진기한은 수의학과를 다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휴학을 결정하고 ‘가늘고 길게’ 살기로 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 생이다. 덥수룩한 머리, 지퍼를 끝까지 올린 빨간 져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어딘가 ‘멍’을 때리는 듯한 시선 등 진기한의 모습은 동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그 평범함을 입은 이강욱은 허세와 지질함을 섞은 특별한 ‘진기한’을 만들어냈다.

배우 이강욱.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그를 특별하다고 생각 안 해요. 보통 젊은이예요. 수의학과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하숙집 방에 쳐박혀서는 ‘롤’(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서 사는 청년이죠. 진기한 자체가 지금 20대 청년들의 모습과 동떨어지진 않았을 거예요. 공무원 시험이 내게 필요한 일인지 알겠는데 즐겁지 않은 거죠. 그래서 현실이 아닌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진기한에게 그 ‘공간’이 가상 현실인 ‘게임’인 것뿐이죠. 단지 너무 빠져 있을 뿐. (웃음) 누군가에게 애인이 그런 존재일 수 있고 또 다른 취미 생활이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매개체가 돼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는 ‘진기한’을 빗대며 자신에 대해 말했다. 이강욱은 “진지한과 나는 가상공간에 빠져 사는 인물이라는 점에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사람 이강욱의 삶도 흥미롭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무대라는 가상공간에 흥미를 갖게 된 거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극의 현실을 반영한 모방된 세계, 즉 무대를 통해 현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역할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알게 된다고 할까. 결국 ‘사람’ 이강욱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해요.”

SBS ‘미세스 캅’에서 철부지 이사로 출연했던 이강욱.(가운데) 사진제공|SBS


최근 종영한 SBS ‘미세스캅’에서 KL 그룹 이사 ‘강재원’ 역을 맡아 철부지 망나니 연기를 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너 죽을 때 못 생겼더라. 그거 심의에 안 걸리냐’며 놀리더라고요”라고 하던 이강욱은 “드라마에 나오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근데 걱정이에요. 또 연극하면 많이 못 보실 텐데”라며 웃었다.

“영화 ‘소셜포비아’때 만난 감독님과의 좋은 인연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고 운 좋게 역할을 따냈죠. 드라마 현장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긴박하게 촬영을 하다 보니 선배들의 연기로 인해 NG가 나는 경우가 없더라고요. 연극과는 또 다른 좋은 수업이었어요. 게다가 제가 언제 ‘재벌 2세’연기를 하겠어요? 하하. 악역이라도 또 할 거냐고요? 작품만 좋다면 당연하죠!”

형식적인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말이다. 형식적인 물음에 형식적인 답변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고민을 많이 했다. 그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을 이어 나갔다.

“연기라는 부분이 오묘해요. 시간이 지나면 연기에 훈련된 몸이 돼요. 태도나 자세가 연기자처럼 변하는데 상대적으로 연기에 대한 의지나 열망은 줄어들 수 있더라고요. 그 열정을 유지하고 계속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갑자기 연기를 잘 하게 되는 사람이 되거나 조금씩 잘 하게 되는 사람 중 택하라고 한다면 후자를 선택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엄청 잘하는 되고 싶지만! (웃음) 그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불행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조금씩 연기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재미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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