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미운오리 맥마혼은 어떻게 백조가 되었나

입력 2016-01-22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1일 화성종합실내체육관에서 ‘2015-2016 NH농협 V리그’ 화성 IBK기업은행과 대전 KGC인삼공사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에 앞서 4라운드 MVP에 선정된 맥마혼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화성|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몸 둔하고 수비도 형편 없던 맥마혼
눈물 쏙 빼는 혹독한 지옥훈련 극복
동료들 홀로서기 채찍에 책임감 배워


V리그 팬들이 좋아하는 외국인선수 스타일이 있다. 백인의 장신 대포다. 팀에 많은 우승까지 안겨주면 전설이 된다. 역대 V리그에서 그런 타입에 가장 잘 들어맞은 선수는 삼성화재 가빈이었다. 가빈은 2009∼2010시즌 V리그 최초로 네 자릿수 득점(1110)을 기록했다. 3시즌 동안 무려 3061점을 올렸다. 삼성화재 레오가 3시즌 동안 3233득점, 2014∼2015시즌 1282득점으로 2가지 기록 모두를 깨기 전까지는 그 어떤 외국인선수도 범접하지 못했다. 배구를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고, 다른 팀 스카우트의 레이더에 들지 않았던 무명의 선수가 타고난 높이와 파워로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갔기에 더욱 극적이었다.

올 시즌 처음 외국인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한 여자프로배구단들은 걱정이 많았다. 많은 돈을 주고 데려왔던 과거 용병들과 기량차가 클 경우 경기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IBK기업은행 리즈 맥마혼의 최근 기량을 보면 그런 소리는 사라질 듯하다. 트라이아웃 전체 5순위. 키만 크고 몸은 둔했던 맥마혼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이정철 감독은 요즘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6개월 만에 ‘여자 가빈’으로 진화한 맥마혼은 V리그의 선수육성 노하우를 잘 보여준다.


●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IBK기업은행 선수들

지난해 8월 1일 다른 외국인선수들과 함께 입국한 맥마혼은 키 198km, 몸무게 87kg의 체격만 눈에 띄는 선수였다. 몸도 느렸고, 수비도 형편없었다. 공격에서도 장점인 키를 활용할지 몰라 불안했다. 공을 제대로 때리지 못해 힘이 실리지 않았다. 동료들은 “올 때도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처음 보니 그보다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데스티니, 알레시아 등과 손발을 맞췄던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여러모로 모자랐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훈련이 시작됐다. 맥마혼에게 갖가지 주문이 갔다. 자신이 과거 해왔던 배구와는 차원이 다른 디테일을 요구했다. 멘탈이 붕괴됐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서 자주 울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감싸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그 대신 책임감을 요구했다. IBK기업은행만의 독특한 팀 문화였다. 주장 남지연은 “우리는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다. 격려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안 하면 이기지 못한다. 죽는다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요구한다. 그래야 팀이 탄탄해진다”고 밝혔다. IBK기업은행은 그런 면에서 다른 팀들보다 훨씬 프로다웠다. 숙소에서 함께 생활할 때나 편한 시간에는 동료로서 여러 배려를 해줬지만, 훈련과 경기 때만은 양보가 없었고 극한으로 몰고 갔다.


강훈련 속에 울면서 V리그의 디테일을 배운 맥마혼

1라운드에서 맥마혼은 129득점, 공격성공률 39.86%에 그쳤다. 수비 약점도 크게 두드러졌다. 부담감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땀의 성과를 믿는 이정철 감독은 더욱 혹독하게 조련했다. 하루에 500∼600개씩의 공을 때리게 했다. 다른 팀들보다 훈련시간이 길었다. 매일 최소 2시간 이상을 공격에 투자했다. 맥마혼은 차츰 공을 때리는 요령을 익혀갔다. 타점도 살려냈다. 볼 끝이 살아있는 김사니의 세트 덕분에 장점이 발휘됐다. 맥마혼은 정타로 공을 때려도 상대 수비수들이 받기 어려워하는 지저분한 구질을 갖고 있었다.

김사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2라운드(107득점·공격성공률 41.59%), 3라운드(132점·43.80%) 계속해서 성적이 향상했다. 이 감독은 “디테일에서 하나 둘 좋아지면서 주문을 줄였다. 심성이 착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힘들었을 테지만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와준 덕분에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기량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마음도 여리고 어린 맥마혼이 힘들까봐 경기 전날에는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오라고 자주 외출도 허용했다. 맥마혼은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았다. 청국장마저 잘 먹었다. 가끔 다른 외국인선수와 만나 수다를 떨고 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김사니의 선택과 김희진의 희생

5일 도로공사전에서 드러난 맥마혼의 기량은 종전과 전혀 달랐다. 타점과 파워가 무시무시했다. 59%의 엄청난 공격성공률에 47득점을 기록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블로킹 위로 때리는데 방법이 없었다. 만일 5세트까지 갔다면 60점도 내줬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4라운드 맥마혼이 정상궤도로 올라서자 김사니의 선택이 달라졌다. 집중적으로 공을 올렸다. 경기마다 새로운 공격 루트를 찾아가며 상대의 분석을 무너트렸다. “이미 한 번 보여준 공격 코스는 대비할 것 같아서 경기마다 새로운 준비를 했다”던 김사니다. 그에 힘입어 맥마혼은 4라운드 143득점, 공격성공률 45.45%로 더 높이 비상했다. 4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지금 다른 팀 수비수들은 맥마혼의 공격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가빈도 상대에게 그런 위압감을 심어줬다.

김사니는 “맥마혼이 성실하게 노력한 덕분”이라고 칭찬했다. 이와 함께 김희진의 헌신을 들었다. “맥마혼이 쉽게 점수를 내는 것은 (김)희진이의 공이 크다. 중앙에서 희진이가 뜨면 상대 블로커가 마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맥마혼은 편하게 공격한다”고 설명했다. 김희진이 미끼 역할을 잘해주면서 맥마혼은 자신의 배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드라마틱한 3주를 경험했다. 맥마혼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