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실패한 똑딱이? 박경수의 100홈런이 대단한 이유

입력 2017-09-1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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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위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4회말 1사 1루에서 kt 박경수가 LG 선발 임찬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치고 있다. 수원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00호 칠 때까지 안 빼!”

kt 김진욱 감독은 15일 수원 LG전을 앞두고 짐짓 단호한 척 말하더니 미소를 머금었다. 기나긴 페넌트레이스 막판. 지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다른 선수들은 이날 선발 라인업에서 일부 빼기도 했지만 박경수(33)만큼은 선발출장 명단에 넣겠다는 얘기였다.

박경수는 6일 수원 넥센전에서 개인통산 99호 홈런을 친 뒤 홈런포가 침묵하고 있었다. 날마다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거포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칫 아홉수가 길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김 감독의 바람은 해를 넘기는 것보다 올 해 안에 100개를 채우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1번타자로 넣어 타순이 많이 돌아오게 하라”는 취재진의 농담에 김 감독은 “그럴까?”라며 웃더니 이날 LG전에 5번 2루수로 이름을 올렸다.

감독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박경수가 마침내 개인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다. 0-3으로 끌려가던 4회말 1사 1루. 볼카운트 3B-2S에서 상대 선발투수 임찬규의 6구째 몸쪽 커브(시속 110㎞)를 잡아당겨 왼쪽 폴 안쪽으로 들어가는 2점홈런(비거리 115m)을 날렸다. 이로써 박경수는 올 시즌 15호이자 개인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하게 됐다.

15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위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4회말 1사 1루에서 kt 박경수가 LG 선발 임찬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친 후 김진욱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수원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사실 개인통산 100홈런은 과거엔 거포의 상징으로 평가됐지만, KBO리그 역대 81번째일 정도로 이젠 아주 드문 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박경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경수는 2003년 성남고 졸업 후 LG 1차지명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였지만, LG 시절엔 기대만큼 방망이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다. 구장 규모가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한 탓도 있지만 2014년까지 LG 유니폼을 입고 12년간 기록한 홈런수는 43개에 불과했다. 군복무 2년(2012~2013년)을 제외하더라도 10년 동안 연평균 4개꼴. 실제 LG 시절엔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LG 시절 통산타율 또한 0.241에 머물렀고, 장타율 역시 단 한 번도 4할을 넘기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도, 팬들도 박경수는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먼 선수로 인식했다.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도 방망이보다는 수비로 팀에 기여하는 선수쯤으로 봤다. 실제 박경수 스스로도 자신을 홈런타자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kt 이적은 그의 야구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2014년 말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뒤 4년간 18억2000만원에 신생팀 kt 유니폼을 입은 뒤 잠재력을 제대로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숨어있던 힘을 이끌어낸 이는 kt 창단 사령탑으로 부임한 조범현 전 감독이었다. 박경수의 잠재력을 알아보고는 FA 영입을 지시한 조 감독은 박경수에게 다짜고짜 “홈런 20개는 쳐야한다”고 미션을 내렸다. 박경수는 “나도 처음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해보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고 말했을 만큼, 그게 가능하리라고 본 사람은 사실 조 감독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조 감독은 박경수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했다. 주자가 있을 때마다 박경수가 벤치를 쳐다보며 번트 자세를 취하려 하자 “타석은 치러 가는 곳이지 작전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며 마음껏 방망이를 휘두르도록 주문했다.

15일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위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4회말 1사 1루에서 kt 박경수가 LG 선발 임찬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친 후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수원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LG 시절 ‘실패한 유망주’, ‘반쪽짜리 똑딱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박경수는 이후 거짓말처럼 홈런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2015년 한 시즌에 LG 시절 12년간 쳐낸 홈런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22홈런을 때려냈고, 지난해에도 20홈런을 돌파했다. 그리고 올해 이날까지 15홈런을 보태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개인통산 100홈런 고지를 밟았다. LG에서 12년간 43홈런을 기록한 그는 kt에서 단 3년 만에 57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변신을 보면 ‘인생 참 모른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모두가 비아냥대던 ‘똑딱이’에서 이젠 누구나 인정하는 ‘수원거포’로 변신한 박경수. 그를 보노라면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박경수의 100홈런이 더 대단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수원 |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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