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인판티노 회장은 경기 후 FIFA 홈페이지를 통해 기념비적인 ‘코리안 더비’를 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역사적인 경기가 경기장이 가득 찬 상태에서 열리길 기대했지만 스탠드에 일반 팬들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TV 중계가 안 되고, 비자 문제로 해외 언론이 북한에 못 들어왔다고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한순간에 모든 걸 바꿀 순 없다. 관련 이슈들에 대해 북한축구협회 관계자들에게 물어봤다. 축구가 북한을 포함한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판티노 회장은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과 북한축구협회를 배려해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적지 않게 놀랐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는 정치와의 분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는 넘지 못한다. 이번 코리아 더비가 그랬다. 최근 유사한 사례는 또 있었다.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당시 아스널(잉글랜드) 소속 헨리크 미키타리안은 비자 문제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미키타리안의 모국인 아르메니아는 결승전을 개최한 아제르바이잔과 영토 분쟁 중이다. 아제르바이잔이 안전 문제를 들어 미키타리안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이 일로 유럽 축구팬들은 UEFA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어떨 도리가 없었다. 미키타리안은 팀과 떨어져 런던에서 응원만 했다.
한국의 이번 북한 원정도 정치 논리가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원하는 만큼의 원정 인원을 꾸리지 못했다. 당초 60명 정도를 계획했지만 북한축구협회 등과의 협의를 거쳐 인원은 최종 55명이 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준비하는 과정 중엔 인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원정을 준비할 때와 달랐다. 북한축구협회가 메일을 회신하지 않아 AFC가 대신 북한의 홈경기 개최 의사를 확인해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했다. 현장 답사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한국 취재진의 방북 불가, 생중계 불발 등은 어쩔 도리가 없을 수도 있다. 선수들은 이례적으로 북한 원정을 앞두고 별도의 방북 교육을 받았다. 핸드폰은 아예 가지고 들어가지 못했다. 준비 과정도 다른 원정 경기와는 많이 달랐고, 복잡했다. 북한축구협회가 실제로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대표팀에 다른 국가와 동등한 대우를 해줬는지 의문스럽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원정을 준비하고 다녀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문제점이 없었는지를 파악해 FIFA와 AFC에 공식 항의할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북한 원정은 끝났지만 최종예선에서도 북한과 같은 조에 다시 만날 수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만큼 일찍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라도 FIFA와 AFC에 북한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상세히 알릴 필요는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FIFA와 AFC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