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죽이고 싶어했던 그 남자” 연극 원티드 우춘근

입력 2020-02-09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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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하시죠. 당신의 신분을 완벽히 세탁해 드릴 테니.”
“나보고 소시민이 돼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차라리 죽겠어!”

닫힌 공간. 가둔 자가 내민 서류를 단호히 밀치며 갇힌 자가 절규한다.
그의 이름은 우춘근.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으로 지목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춘근은 어느 날 감자기 세상의 눈으로부터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분노한 시민들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아 그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를 죽이는 자는 10억 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기한은 무기한.
세상이 그를 ¤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맡겨 두었던 공기총들이 대거 출고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춘근은 여기에 있다. ‘갇힌 자’의 이름으로.

서울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원티드(WANTED) 우춘근’은 신성우 작가가 대본을 쓰고 정범철이 연출을 맡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국내 연극계의 실력파로 인정받아 온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수확한 첫 결실이라는 점도 의미있다.

2인극으로 두 명의 우춘근(공재민, 김대흥)과 여인(류진현, 장희재)이 번갈아 무대에 선다.

여인(신분세탁회사 직원)과 우춘근의 좁은 방은 바깥세상만큼이나 치열하고 복잡하다. 여인은 “신분을 세탁하고 깨끗이 새출발하라”며 계약을 종용하고, 우춘근은 종종 흔들리는 듯싶다가도 “소시민으로 살 바엔 죽는 게 낫다”며 버틴다.

제작진은 “이 작품의 (황당할 수 있는) 설정은 보통사람들이 품은 ‘앙심’의 희극적 표현”이라고 했다.

‘기차’, ‘삼류배우’, ‘칸사이주먹’, ‘최종면접’ 등의 작품에서 깊이있는 연기를 보여 주었던 김대흥은 관객이 양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감정을 폭발시키며 객석의 ‘앙심’을 끌어냈다.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 같으면서도 종내는 미워지고야 마는 우춘근이다.

장희재는 시종일관 우춘근을 쥐락펴락하는 여인 역을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우춘근과의 밀당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보면 여인의 미묘한 심리적 색깔변화가 눈에 띈다.
어디까지가 (우춘근에 대한)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의구심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막판에 ‘툭’하고 떡밥이 던져진다.

이 연극의 마지막은 이소룡의 ‘정무문’, 폴 뉴먼·로버트 레드포드의 ‘내일을 향해 쏴라’, 뮤지컬 ‘헤드윅’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냄새는 가장 짙고 구리다.

연극 ‘원티드 우춘근’은 2월 16일까지 공연한다.
공상모임 作心365가 주최, 주관했으며 디자인트루퍼스, 컨텐츠삼점영이 제작지원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공상모임 作心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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