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에서 1999년에 태어난 쌍둥이 소녀를 연기한 이재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해마다 그런 ‘괴물 신인’은 탄생한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여성배우일 때가 많다. 올해 그 자리를 가장 먼저 차지한 주인공은 장재현 감독의 영화 ‘사바하’(제작 외유내강)가 발굴한 이재인이다. 2004년생인 그는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10대 연기자다.
장재현 감독은 2015년 내놓은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을 통해 신예 박소담을 발굴했다. 당시 박소담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괴물 신인’이란 평가가 따랐다. 박소담은 당시 신인으로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맡아 극의 긴장을 높였고 관객에게 각인됐다. 이후 다양한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바하’에서 그 몫을 해내는 주역은 이재인이다. 영화 메시지를 상징하는 주인공인 ‘금화’와 ‘그것’, 두 인물을 연기한 이재인은 10대가 소화하기에는 결코 간단치 않은 캐릭터를 체득해 작품의 분위기에 그대로 녹아든다. 이정재, 박정민 등 경험 많은 배우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KAFA 단편영화로 경험 쌓으면서 연기 단련
신인 연기자들이 영화의 주요 배역을 맡기까지의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몇 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하면서 높은 경쟁률을 뚫는다. 이재인도 마찬가지다.
이재인은 ‘사바하’ 오디션에 응시해 4단계 관문을 거쳤다. 쌍둥이 자매인 금화와 그것을 맡을 배우를 신인으로 찾으려던 제작진은 오디션 응시자들에게 ‘읊조리는 듯한 대사’를 줄곧 주문했다.
이에 이재인은 평소 외우고 있던 박두진의 시 ‘해’를 읊었고 이에 덧붙여 직접 쓴 자작시를 더해 그만의 이야기를 감독과 제작진 앞에서 펼쳤다.
실제로 평소 작문을 즐기고 시도 쓰는 이재인은 휴대전화로 영화를 찍는 등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고 있다. 덕분에 10대의 눈으로 보기에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사바하’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폭도 깊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 시사회에서 이재인을 두고 “연기 경험에 비해 장면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어려운 배역인데도 불구하고 이해력은 물론 종교적인 지식도 많이 소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강원도가 고향인 이재인은 원주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평창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기회가 닿아 영화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5학년 때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소속사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단편, 장편영화 작업 기회를 꾸준히 마련해 이재인이 연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통해 이재인은 ‘장례난민’ ‘그녀의 속도’는 물론 영화계에 존재를 알린 계기가 된 영화 ‘어른도감’을 차례로 소화했다. 드라마나 예능 출연을 적극 돕는 여느 매니지먼트사와는 전혀 다른, 10대 연기자 트레이닝을 통해 지금의 실력을 이끈 셈이다.
이재인의 에너지는 ‘사바하’를 본 관객들도 공감하고 있다. 영화의 서문을 여는 내레이션을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관객에 전달하는 것은 물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스터리를 가중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녀 금화에 더해 쌍둥이인 ‘그것’까지 1인2역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실력에 호평이 따른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목격되는 1인2역이 지나치게 1차원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재인의 ‘저력’이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재인은 두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영화 촬영 말미 ‘삭발’도 감행했다.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눈썹까지 제거한 채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소화했다. 성인 연기자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과감한 도전이다.
이재인의 ‘어마 무시한’ 에너지를 먼저 알아 본 사람은 함께 연기한 배우들. 이정재는 “자신이 표현해야 할 모든 걸 표현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했고, 박정민은 “감독님과 따로 ‘이재인이 정말 잘 한다’는 말을 나눴다”며 “이재인의 삼촌 팬이 됐다”고도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