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보면어깨가떡…우리삶의보람이죠”

입력 2008-05-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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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좌완 김광현(20)은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투수로 성장했다. 김광현의 구위가 현재 대한민국 No.1이란 사실은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투구폼과 구종, 멘털 변화만 주목했지 정작 김광현이 왜 저렇게 열심히 던지는지는 거의 다뤄진 바 없다. 도대체 무엇이 김광현을 지탱해 온 원천이었을까. 실마리는 ‘가족애(愛)’였다. #회상 1: 2007년 봄 오키나와 우라소에 구장. SK는 야쿠르트와 평가전을 치렀다. 선발 투수는 김광현. 심드렁한 눈치의 일본 취재진에게 “저 투수가 한국의 사이토 유키”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요란해졌다. 김광현이 야쿠르트 3∼5번을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MVP 출신이란 정보를 접하자 부산함은 더해졌다. 고시엔 대회 히어로인 일본의 ‘손수건 왕자’에 비견될 특급 기대주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을 접한 일본 기자들은 경기 후 인터뷰를 위해 몰려갔다. 일본 특유의 시시콜콜 질문이 이어지던 중 ‘혹시 별명 있냐’는 물음에 김광현은 잠깐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집이 떡집을 하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떡광현이라 불렸어요.” #회상 2: 2007년 6월초 문학구장. 5월까지 기대 이하의 부진을 거듭하던 김광현이 막 2군으로 떨어진 시점이었다. 그러나 SK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2군에 보내지 않고, 곁에 두고 가르쳤다. 이에 대해 계형철 2군 감독은 “광현이네 떡 좀 맛볼까했는데. 녀석이 떡 가져온다고 약속했거든요”라고 넉살좋게 말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김광현이 승리를 거둔 다음날이면 문학구장에 어김없이 떡이 배달된다. 김광현(20)의 부모님 인터뷰는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시즌 중이라 김광현이 부담스러워 했기에 SK 구단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우리 같은 사람 취재할 일이 있나요? 안 하면 안 되나요?”라며 완곡하게 고사했다. 곡절 끝에 어렵사리 OK 사인을 얻어내고, 안산 집을 방문하기 전 SK 박철호 홍보팀장은 딱 하나의 운을 띄웠다. “가서 직접 보시면 광현이가 왜 바르게 컸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광현이 부모라고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 안산의 선경 아파트. 40여 평 크기로 방 4개에 거실이 있는 일반 가정집이었다. 들어오자마자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청소년 대표 시절 광현이가 역투하는 대형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집 곳곳에 광현이의 대표팀 사진이 보였다. 아무 말 듣지 않아도 광현이가 집안의 자랑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은 SK 유니폼을 입은 광현이 사진이 한 장도 안 보이는 사실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 김인갑 씨(51)는 “지난해 광현이가 한참 못 했었잖아요. 그러다보니 가지고 싶어도 SK 구단에 차마 사진 달라는 얘길 못 하겠더라고요”라고 했다. 어머니 전재향 씨(48)도 웃으며 “신문이나 인터넷 보면 광현이 사진이 많잖아요. 그래서 SK 유니폼 입은 아들 사진을 얻고 싶어서 기자님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려고 아이디를 적은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광현이 부모입니다’라고 말해도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또 광현이 부모라고 내세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차마 연락하진 못했네요. 사진만 얻으면 액자는 저희들이 마련하면 될 텐데….” 지금 있는 대표팀 사진을 얻은 사연도 뭉클하다. “어느 잡지사에선가 청소년대표팀 때 광현이 사진을 잔뜩 가져와서 사달라고 하는 거에요. 100만 원을 부르더라고요. 자식 사진이니까 안 사줄 수도 없잖아요.(웃음)” 김광현 부모님은 이런 분들이다. ○살인 미소에 어린 한(恨) 부모님은 광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사 왔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간 것이 전부였던 광현이는 3학년이 되자 ‘야구를 하겠다’고 졸랐다. 태권도에도 소질을 보여 사범이 광현이를 탐냈지만 광현이의 선택은 오로지 야구였다. 육상도 잘했고, 공부도 못하지 않았다. 때문에 어머니는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광현이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아버지도 광현이의 선택을 밀어줬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해낼 줄 꿈도 못 꿨죠. 다만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야구하기 싫다고 말한 적이 없는 거에요. 작년에 그렇게 힘들어 했어도 그 말만은 안 했어요.” 투수였던 광현이는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때문에 고교진학을 놓고 집안은 또 한번 갈림길에 놓였다. 안산공고 입학이 순리였지만 서울의 소위 야구명문고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부모 마음에 좋은 학교로 보내고 싶었죠. 그때만 해도 안산공고는 야구로 잘 알려진 학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광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안산공고에 가겠다는 거에요. 광현이가 어렸을 때 LG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너 서울에 있는 학교 안 가면 LG에 못 갈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럼 LG는 나중에 가지’라고 하더라고요.” 안산공고로 진학한 광현이는 1학년부터 바로 주전을 꿰찼다. 아버님은 “돌이켜보면 다 행운이죠. 잘 한 선택이었고요. 1학년부터 주전 뛰었고, 미추홀기에서 4경기 완투하고 우승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잖아요. 국가대표도 됐고. SK의 최고 계약금을 받았고. 김성근 감독님도 만나게 됐고요.” 광현이가 정상을 정복하기까지 야구에선 마이너였던 안산공고는 판정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광현이가 처음엔 화를 냈어요.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어느 순간 ‘화를 내봤자 바뀔 일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턴 납득하지 못할 볼 판정이 나와도 그냥 한 번 씩 웃고 마는 거에요.” 괜찮다, 이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기 나름의 암시를 담고 있는 살인 미소엔 어린 시절 겪었던 차별에 대한 아픔과 저항이 서려있는 것이었다. ●“광현이는 SK 자식” 고교 랭킹 넘버원이었던 광현이는 SK의 1차 지명을 받고 계약금 5억원에 입단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SK 신인 최고액. 그러나 한기주가 10억원, 김진우가 7억원에 계약한 전례를 비춰보면 싼 값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복수의 메이저리그 구단은 이미 김광현 스카우트 준비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SK는 외국 구단이 접근하기도 전에 속전속결로 계약을 이끌어냈다. 민첩한 협상술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광현이의 의지가 확고한 덕분이었다. “그 액수도 큰 돈이잖아요. 또 돈에 구애 받았으면 그렇게 빨리 결정하지도 않았겠죠. 다만 학교와도 상의했는데 광현이가 한국에서 경험을 쌓고 해외에 나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선경 아파트여서 SK에서 준 것 아니냐고 농담하자 부모님은 “안산에서 13년째 살았는데 3년 전에 이사왔어요. 광현이 돈은 전부 그 아이 거라고 생각해요. 따로 광현이를 위해 투자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이 벌어오겠죠”라며 웃었다. 오히려 광현이는 가끔 집에 들어오면 용돈을 타간다. 친구 만나서 밥 사줄 정도의 금액이란다. “해외 전지훈련 가기 전에 집에 하루 온 것이 가장 최근이네요. 대통령 선거 때 투표하러 왔었고. 그리곤 기억에 없네요. 숙소에서 생활하고, 월요일도 원정 준비하고 그러니 집에 못 와요. 중학교 때부터 쭉 그랬네요. 광현이는 SK 자식이라 생각해요.” 말은 이렇게 해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광현이 부모님은 지금까지 12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주공떡집을 열었다. 추석, 설날 빼고 쉬는 날이 없었다. 유일하게 떡집을 벗어날 때가 광현이의 선발 등판 날이다. 그것도 수도권과 인천 홈경기에 한해서만 직접 구장을 찾는다. 지방 경기는 TV로 응원할 뿐이다. 아직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기에 광현이의 코나미컵 등판이나 대만 올림픽 예선전도 TV로 마음을 졸였다. 천주교도인 할머니는 기도를 드린다. “광현이가 나중에 박찬호나 박지성 선수처럼 되어서 만에 하나 집이 떡집 하는 게 누가 된다면 그때는 그만둬야겠죠. 그러나 그 아이에게 그 아이의 인생이 있듯 우리에겐 우리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모님이 광현이를 만나는 날은 구장에 가는 날이다. 어버이날도 광현이 등판날이어서 잠실구장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안산시는 김광현을 명예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아버지가 대신 가서 수상했다. 어버이날 선물이 된 그 위촉 트로피는 광현이 방에 고이 모셔져 있다. ●“광현이는 우리 삶의 보람” 자주 아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부모님은 신문, 방송, 인터넷, 잡지 등을 다 챙겨보는 듯 했다. 신문 스크랩북은 집과 방앗간에 나눠서 두고 있다. 아버지는 “그거 챙기는 게 낙이지요”라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광현이가 대한민국 뉴 에이스로 각광을 받자 걱정도 늘었다.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아들이어도 그 속내를 어찌 모르겠는가. “안 보려 해도 광현이 기사에 악플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특히 작년 미디어데이 때 (류)현진이하고 일도 있고, 부진했었고. 그 이후로 광현이가 바깥에 얘기하길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네요. 솔직하고, 자기 할 말 하고, 어디 가서도 귀여움 받는 애에요. 저희 눈에는 아직 애기인데….” 특히 류현진과의 라이벌 전선이 부각되는 데 대해 “어릴 때부터 광현이랑 현진이랑 대표팀을 같이 해서 친해요. 장난도 잘 치고. 대표팀 일로 현진이 부모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참 잘 해주시더라고요. 현진이가 올해 첫승 할 때 축하 전화도 드렸고요. 그런데 자꾸 이러다보니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겠네요. 솔직히 지금 인터뷰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것이 부모 마음일 게다. 1시간 여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부모님의 거듭된 당부가 귓전을 울렸다. “모쪼록 우리 광현이 잘 써 주세요.” 앞으로 광현이에 관해 무엇을 쓰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안산=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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