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내리쳐도경기는계속하라?

입력 2008-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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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배한국여자오픈낙뢰속진행골프협‘뒷짐’,선수“죽더라도골프장서죽자…스윙도불안”
○ 악천후 예보 불구 경기 진행 “이젠 목숨까지 내 놓고 골프를 쳐야 할까 봐요…” 18일 경기 용인의 태영 골프장에서 끝난 한국여자오픈골프대회에 참가했던 어느 선수는“대회 내내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면서 경기를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회 최종 라운드가 열린 경기 용인 지역에는 5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다. 올 들어 내린 비 중 가장 많은 양이다. 문제는 비가 아니었다. 이날 용인 지역에는 하루 종일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18일 경기 전 지역에는 많은 양의 비와 함께 천둥 번개가 몰아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회 주최 측인 대한골프협회는 선수들의 안전 보다 대회 진행에 중점을 두었다. 골프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번개가 칠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발표되면 라운드를 중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이를 방관하며 안일하게 대처한다. ○ 수년새 낙뢰 인명피해 잇따라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골프장에서는 낙뢰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2004년과 2005년 충북의 A골프장에서는 낙뢰에 맞은 골퍼가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고, 2005년 경기도 B골프장에서는 번개가 치는 날 휴대폰을 통화하던 남자가 낙뢰를 맞고 사망했다. 골프장에서의 낙뢰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주최 측은 대회 도중 오후 12시 20분 한 차례 낙뢰주의 경고 사이렌을 울렸을 뿐 이후에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선수들을 낙뢰 위험으로 내몰았다. 그 선수는 “번개가 치자 10분 정도 경기를 중단했을 뿐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어떠한 대처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플레이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불안감 때문에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번개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스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지애(20·하이마트)와 유소연(18·하이마트)의 연장 승부 중에도 낙뢰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유소연이 18번 홀 그린에서 퍼트하려는 순간 천둥과 번개가 내리 쳐 움찔하고는 어드레스를 풀었다. 유소연은 결국 그 퍼트를 놓쳐 다시 연장에 들어갔고 우승도 신지애에게 넘어갔다. ○ “경기 중단-취소가 능사 아니다” 여러모로 경기를 속행하기는 어려웠지만 대회 주최측이 무리해가면서 경기를 진행한 이유도 있었다. 우선 이번 대회의 로컬룰을 보자. 경기가 중단될 경우와 취소될 경우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경기가 중단되면 잔여 경기는 다음날로 순연된다. 하지만 그 경우 골프장 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부터는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국내 골프장의 형편으로 볼 때 다음날 잔여 경기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경기 중단이 아닌 취소가 될 경우 상황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다. 18일 경기의 경우 챔피언조가 오전 10시 40분에 티오프해 이미 전반 9홀 이상을 마친 상황이었다. 따라서 경기를 취소할 경우 3라운드 성적은 모두 무효 처리되고 2라운드 성적만으로 우승자를 가려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2라운드에서 공동선두가 나와 유소연과 서보미가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이 경우 유소연과 서보미만 따로 다음날 같은 코스에서 연장전을 벌여 우승을 결정한다.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대회 주최 측에게는 부담스런 결과였다. 그래서 진행된 낙뢰속의 대결이었다. 공교롭게도 3번째 연장전까지 이어지면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고 주최 측은 혹시나 하면서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골프협회 한 관계자는 “경기를 중단하거나 취소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극심한 공포감을 느낄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대회를 진행한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특히 선수를 보호해야 할 협회가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 PGA-LPGA 경기면 진행 못했을수도 만일 선수들의 발언권이 강한 PGA나 LPGA에서였다면 선수들의 항의와 함께 경기는 쉽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하나은행 코오롱챔피언십대회에서 강풍이 심해 볼이 멈추지 않자 경기가 취소된 적도 있다. 이런 저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대회는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정규 라운드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까지 돌입한 신지애와 유소연은 악천후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죽더라도 골프장에서 죽자”하는 생각으로 경기를 했다는 신지애의 말에서 우승을 향한 선수들의 열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번개속 대결의 성과였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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