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클래식] 30년만에맛보는‘필라델피아사운드’

입력 2008-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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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처음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던 것은 80년대 중반 고등학생 때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모음집 음반이었다. 지휘는 예의 유진 오먼디. 손을 벨 듯 각이 선 LP 겉표지에는 남녀 귀족들이 어우러져 ‘돌리고 돌리고(물론 왈츠일 것이다)’를 하고 있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클래식 팬들에게 있어 ‘필라델피아’하면 ‘실크처럼 부드러운 스트링(현)’을 모범답안처럼 떠올리기 마련이다. 3대 음악감독이자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로부터 발현하여 후임자 유진 오먼디에 의해 극도로 다듬어진 화려하면서도 풍부한 음색은 ‘필라델피아 사운드’라는 당당한 위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는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들어본 적이 없어”라는 사람의 절반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영화관에서든 TV에서든, 하다못해 CF를 통해서든 좀처럼 빠져나가기 힘든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음악이 바로 스토코프스키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가졌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78년 5월의 일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예술제에 참가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유진 오먼디의 지휘 아래 시벨리우스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필라델피아는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지극히 사랑하는 두 얼굴을 가진 오케스트라다. 창단 100주년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거쳐 간 음악 감독은 단 7명에 불과하니 어지간히 보수적인 오케스트라라 할 수 있는데, 최초의 전기레코딩(1925년), 최초의 영화음악연주(1937년), 미국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CD녹음(1988년) 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줄줄이 훈장처럼 달고 있다. 아, 냉전시대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 오케스트라도 필라델피아였다(1973년). 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30년 만에 내한한다고 하니 반갑고도 설렐 수밖에. 연주장소 역시 그 때 그 자리,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다. 이번에는 제7대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휘자로 온다. 왕년에 명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에센바흐의 최근 지휘 모습을 보니 핸섬하고 날렵했던 청춘은 어디로 가고 중후한(특히 헤어 스타일이!) 노년의 신사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지휘봉을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유진 오먼디도 반짝 반짝 빛나는 두상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필라델피아는 ‘빛나리’ 지휘자를 선호하는 보수적 전통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파란 10대 시절 스트라우스의 왈츠를 들으며 멋도 모르고 ‘과연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유려하기 짝이 없군’ 운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치졸한 감상이어 부끄럽기만 하다. 그 치졸함을 만회하기 위해, 이번 공연에서는 제대로 ‘귀를 씻고’ 경청해 볼 생각이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 추천 명반 □ 1 부르노 발터(지휘)|콜럼비아 심포니오케스트라|1958년|CBS SONY|스테레오 발터 특유의 하늘거림이 살아있는 전통의 명연주. ‘모차르트의 발터가 베토벤을?’이란 무지몽매한 의문에 해머 한 방을 가볍게 날리는 음반이다. 1946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판도 있지만 발터의 분신과도 같은 콜럼비아와 함께 한 이 판이 최고다. 내한한 필라델피아에게는 다소 미안한 일이지만. □ 2 칼 뵘(지휘)|빈 필하모니오케스트라|1971년|DG|스테레오 겉만 번지르르한 음악은 가라. 진솔함과 우직함으로 베토벤의 정곡을 꿰뚫고 들어가는 칼 뵘 지휘의 절정. 단단한 뼈대의 구축과 통일감이 트레이드마크지만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베토벤이 살아 있었다면 바로 이렇게 지휘하지 않았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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