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만에창꽂기성공…“앗싸!실격면했다”

입력 2008-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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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관중석을 바라보며 카리 이하라이넨(54·핀란드) 코치에게 “핀란드에서 창던지기의 인기는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카리는 “핀란드 사람들은 창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범죄율 세계최저국가이자, 국가투명성 세계1위 국가에서 무슨 원한이 많기에….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가 골프 클럽이나 테니스 라켓을 차에 두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창던지기는 핀란드의 국기(國技)다. 대회가 있을 때면 4만 명의 관중이 스타디움을 메운다. 2007년 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대회 창던지기 1위 테로 피트카마키(핀란드)는 핀란드여성이 결혼하고 싶은 남성 1위에 올랐다. 지극히 원초적인 스포츠가 500만 핀란드 국민들의 생활체육이 된 것은 어떤 매력 때문일까. 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경산 경북체고로 향했다. ○창던지기는 부상과의 싸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박재명(27·태백시청), 2008년 제37회 전국종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부 3위 정상진(24·안산시청), 여자부 1위 김경애(20·한체대)가 함께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창 고르기. 남자 선수들은 260cm에 800g, 여자선수들은 220cm에 600g짜리 창을 쓴다. 유남성(30) 코치는 여자 선수용 창을 집어줬다. “일단 던지면 되나요?” 과욕은 금물이다. 창던지기 선수들은 부상을 달고 산다. 여자대표팀 서해안(23·한체대)은 부상 치료 때문에 훈련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상진은 어깨인대 손상, 허리 디스크, 왼무릎인대 손상 등 부상 이력도 다양했다. 창던지기는 도움닫기 이후 정지하면서 창을 던진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왼다리에 엄청난 하중이 실린다. 창을 던지는 쪽 팔꿈치와 어깨도 조심해야 한다.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러닝과 스트레칭이 필수. 400m 트랙을 세 바퀴 돌고나서 필드에 몸을 눕혔다. 박재명은 181cm에 91kg. 하지만 관절을 굽힐 때만큼은 체조요정 신수지처럼 유연하다. 은근히 겁이 나던 차, 유남성 코치가 “몸을 보호하려면 열심히 따라 하라”며 긴장의 끈을 조였다. ○창을 바람에 실어라 이번에는 2kg 포환던지기. 포환던지기를 통해 온몸의 힘을 이용하는 감각을 익히고, 자세를 교정한다. 카리 코치는 “팔꿈치가 어깨 아래로 내려가면 부상 위험이 높다”고 강조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폴리 네발라는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이었다. 25kg짜리 포환도 거뜬히 던질 정도의 강골. 하지만 힘만 믿다가 팔꿈치가 망가져 선수생활을 접었다. 카리 코치는 이어 투사각에 대해 설명했다. “진공상태라면 45도가 가장 적당하지만 대기를 고려하면 보통 35∼37도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유남성 코치는 “창던지기는 연날리기와 비슷하다”고 거들었다. 물의 부력을 이용하는 박태환처럼 대기의 양력을 활용해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 카리 코치는 “사실 가장 좋은 각도는 가장 멀리 나가는 각도”라고 정리했다. 순환논리가 아니다. 대기상황에 따라 정확한 투사각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신비로운 이야기만 듣는 통에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우선 필드에 창을 꽂아야 드디어 창을 잡을 차례. 카리 코치에게 그립을 물었더니 F로 시작되는 욕의 손가락 동작인 가운데 손가락을 곧추세우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불성실한 훈련태도를 질책하려는 것인가. 이어 엄지를 펼쳐서 오해가 풀렸다. 창은 중지와 엄지로 잡고 손바닥 안쪽으로 감싼다. 던지는 순간에는 어깨를 살짝 틀었다가 하체의 힘을 싣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던져봤지만 처음부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창이 바닥에 꽂히지 않고 튕겨 나갔다. 기록이 아무리 좋아도 창 앞부분이 필드에 꽂히지 않으면 실격이다.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경북체고 학생 한 명이 다가왔다. 투척이 주 종목인 2학년 최영훈은 “창을 던지는 순간 어깨가 벌어지고, 손목 스냅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시간 만에 겨우 창에게 대지를 뚫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박재명이 2004년 한국신기록(83m99)을 세웠을 때의 짜릿함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제트기류에 실린 비행기처럼 마지막 과제가 남았다. 도움닫기부터 완벽한 창던지기를 구사해 보는 것. 창던지기는 크게 세 가지 구분 동작으로 나뉜다. 30m가량 도움닫기, 어깨를 옆으로 틀어 크로스스텝을 밟으며 창 던질 준비, 정지하며 창던지기다. 첫 번째 시도, 분명 달려오는 탄력을 이용했는데도 서서 던질 때보다 덜나갔다. 정상진은 “처음에는 잔디에서 하는 것이 더 잘나온다”며 웃었다. 25m도 쉽지 않았다. 기록이 저조할수록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고, 세게 던질수록 기록은 덜 나왔다.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도 카리 코치는 미소뿐. “조금 더 각도를 높여보세요.” 박재명의 한 마디가 귓전을 스쳤다. 힘을 빼고 공중에 창을 놓는 데만 집중했다. “휙.” 훨씬 부드럽게 날아갔다. 창에 대기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어 박재명이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며 창을 던졌다. 제트기류에 실린 비행기처럼 80m 가량을 까마득히 날았다. 창은 바람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실리는 것. 창은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자연의 힘을 이용하고 있었다. 우람한 근육과는 달리 창던지기 선수들은 둥글둥글했다. 세상의 순리와 함께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 듯 했다. 경산=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임진환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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