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울남편은‘마이너스의손’

입력 2008-05-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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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엔 8살짜리 쌍둥이 아들이 있답니다. 일요일 저녁,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저는 두 아이를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 주다보니 손톱 발톱 깨끗이 깎고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오라는 학교 선생님의 알림장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거실에서 TV보며 한가로이 핀둥핀둥 놀고 있는 남편을 불렀습니다. “여보! 이리 와서 애들 손톱 좀 깎아줘요. 난 지금 동화책 읽어주는 중이라 바쁘거든.” 그러자 이 남자가 거실에 가만히 앉아서, “뭐? 나보고 애들 손톱을 깎아주라고? 싫어. 난 손톱 깎는 게 제일로 무섭단 말이야. 실수로 애들 살이라도 집으면 어떡해∼ 나 매일 사고치는 거 알면서 그런 걸 시키냐∼” 이러는 겁니다. 참나! 제가 말을 말아야지. 애초에 시킨 제가 잘못이었습니다. 저는 읽어주던 책을 내려놓고 아이들 손톱부터 깎아주면서 지난 번 시어머니 생신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 날, 동서네에서 하룻밤 자기로 하고, 시어머니랑 저희 내외랑 같이 동서 네 집으로 갔습니다. 잠 잘 시간이 되니까 서방님이 동서 피곤하다고 먼저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딸아이인데, 머리도 제법 길고, 손이 많이 갔습니다. 그런데도 딸 목욕 다 시키고, 속옷까지 손빨래해서 널어놓고, 정말 같은 형제지만 어쩜 그렇게 다른지… 서방님 행동에 제가 다 감동을 먹었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 남편은 뭐하는가 봤더니, TV 앞에 가로로 누워서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배를 쥐고 껄껄껄 웃어대고 있는 겁니다. 정말 눈치코치 없는 남편이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애들 좀 씻기라고 그러면 “아니 애들이 몇 살인데 아직도 씻겨야 돼∼ 8살이면 혼자 다 해야지! 얘들아! 빨리 목욕탕 가서 씻고 나와라∼” 이럽니다. 제가 옆에서 째려보고 있으면, “나한테 무리한 거 요구하지 마라. 난 그런 거 하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은 제가 손을 다쳐서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아이들 머리를 감겨줘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조심성이 없는지 애들이 눈에 샴푸 들어갔다고 맵다고 울었습니다. 남편은 물 뿜어대는 샤워기를 잘못 만져서 홀딱 젖어있고, 정말 보고 있는 제가 다 속 터질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물건엔 손만 댔다하면 왕창 고장을 내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아이들 호흡기 질환에 좋다는 공기 청정기를 하나 장만했는데, 필터 세척하라고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남편한테 그거 세척 좀 하라고 시켰더니, 필터 부분의 문이 안 열린다고 반 강제로 잡아 뜯어버렸습니다. 그만 그 튼튼한 문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열었기에 멀쩡한 새 물건을 한달 만에 중고로 만들어 놓았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태연하게 “그러게 이런 거 나 시키지 말라고 했잖아∼ 요즘 대여하는 제품도 많은데 왜 하필 필터 세척하는 걸 사가지고… 손 많이 가고 신경 쓰이게 시리” 이러는데 정말 어찌나 기가 막혔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목욕탕 전구를 교체한다고 들어갔다가 유리 갓을 깨트려놓았습니다. 제가 “전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그걸 왜 박살을 내∼ 손끝에 망치라도 달린 거야!” 하고 소리를 빽 질렀더니, “아니 난 그냥 만지기만 했는데 금이 가버리더라고” 이러면서 머리를 긁적긁적 했습니다. 결혼 생활 어느덧 19년째, 전 이젠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손톱 깎을 때도 괜히 애들 손 집을까봐 무섭다는 남편도 그러고 보면 이해가 됩니다. 우리 집에서 손 하나 깜짝하지 않는 우리 남편, 어떻게 보면 그게 도움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매일 오전 09:05-11:00 수도권 주파수 FM 106.1MHz www.kbs.co.kr/radio/happyfm/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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