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고사리캐려다“걸음아날살려라”

입력 2008-05-2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작년 바로 이맘때였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아침, 식구들은 단잠에 빠져있고 저는 혼자 몰래 뒷산에 고사리를 캐러 나왔습니다. 비가 온 탓인지 풀밭 속에 탐스럽게 고개 숙인 고사리가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노다지 캐는 마음으로 고사리를 캐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고사리에 정신이 쏙 팔려있었는데…. 슬며시 고개를 돌린 순간! 바위 위에 똬리를 틀고 앉은 뱀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치켜든 무시무시한 뱀! 언제부터 나를 노려보고 있었을까? 정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머리끝은 하늘로 쭈뼛거리는데 주위엔 고요한 일요일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고사리 캐다 말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헐레벌떡 마을 어귀에 들어섰더니, 이번엔 덩치 큰 누렁이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막 짖어대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서 이번엔 누렁이와 대치를 해야 하다니! 왜 이리 일이 꼬이나 미칠 것 같았습니다. 대문도 활짝 열려 있고, 보아하니 목줄도 풀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집안을 향해 “아줌마∼ 아줌마∼ 개가 나왔어요. 개 좀 잡아주세요” 하고 큰소리쳐 봤지만, 안에는 인기척이 없고, 덩치 큰 누렁이는 더 눈을 부릅뜨고 짖어 댔습니다. 마침 저쪽에서 4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저는 기회를 잡아 그 아주머니 꽁무니에 바짝 달라붙어 살금살금 발을 움직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잡아 삼켜버릴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누렁이가 그 아주머니 앞에서는 꼼짝도 안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를 익히 알았는지, 아니면 다른 마음이 들었던 건지, 가만히 제가 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바탕 소란을 겪고, 집에 들어갔더니 남편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당신 어데 갔다 와? 자고 일어나 보니 사람이 없어서 난 또 도망간 줄 알았지. 그런데 그 몰골이 뭐야? 깡통 차면 딱 어울리겠다” 말하는 겁니다. 그 소리에 거울을 쳐다보니 가랑비에 젖은 옷이 흙투성이가 돼,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신발도 황토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고사리 꺾으며 뱀 만난 얘기부터 큰 누렁이 만난 얘기까지 남편에게 들려줬습니다. 남편은 “요즘 동네에 좀도둑이 많아서 개를 묶어두지 말자고 반상회에서 얘기가 나왔대. 아마 그래서 그 개가 풀어져 있었던 걸 거야” 설명해줬습니다. “도둑 잡으려다 지나가는 사람 잡겠다”며 투덜거렸더니, 남편이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깡통 찬 사람이겠지”라며 놀렸습니다. 전 그 말에 열이 받아서, 아침에 기운 빠진 것도 억울한데 “깡통 얘기 그만 해!”라고 남편에게 소리를 확 질렀답니다. 그게 벌써 작년 일입니다. 요즘은 마을에 개를 풀어놓는 일은 없지만, 그 날 일요일 아침만 생각하면 전 지금도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입니다. 괜히 고사리 캐러 갔다가 봉변만 당하고 왔습니다. 광주 광산|장영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