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기자가만난문화의뜰]이윤택“좀스런일상작별…20세기이상꿈꾼다”

입력 2008-06-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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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은 아직 꿈꾸고 있는가?’ ‘그렇다.’ 그는 유독 꿈이 많은 예술가다.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공연을 앞두고 만난 그는 여전히 새로운 창작과 사랑을 바라고 있다. 10월에는 올해의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고, 11월부터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쓸 생각이다. 이윤택은 정형화되지 않은 날 것에 매력을 느끼고 끊임없이 발을 딛는다. 창작욕이 고갈되면 독일, 일본 등 낯선 미지의 땅으로 떠난다. 아니면 잔인하고 폭력적인 비디오를 20∼30개 쌓아두고 본다. 진이 빠지도록 밤새 보고나면 “내가 이 정도냐? 짐승이구나”하고 느끼면서 연극이 다시 보인다. 천상 예술가인 그는 배우들 연습장에서도, 학생들 수업에서도 언제나 맨발이다. 포장하는 것을 싫어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물을 부으면 불길이 확 솟구칠 것처럼 기름을 안고 산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시, 영화 등 각종 예술영역을 넘나든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유랑’이었다. 여전히 그에게는 ‘전방위 예술가’, ‘유랑광대’, ‘문화게릴라’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의 유랑이 “결국 정착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결과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당연하죠. 정확하다”고 답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가 활동하는 ‘밀양연극촌’이다. 유난히 ‘집단’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탓에 “학교? 잘 안 나갔고. 집? 잘 안 들어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도 가족 중심의 이기주의를 극도로 혐오한다. 이윤택은 “어쩌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족들만 생각하고, 가족들을 존재하게 하는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을 안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세상 사람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연연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지진으로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는데, 무덤덤하다. 우리는 우리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실하게 안 받아들인다. 우리 가족들한테 일이 안 생겼으니까.” 이러한 이기주의를 극복한 집단, 그가 말하는 ‘가장 완벽한 조직’이 ‘밀양연극촌’이다.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이기주의나 소외감 등 각종 딜레마를 다 해소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에도 그가 생각하는 ‘세계의 보편성’을 담으려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어떻게,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正道)로 가는지, 타협하는지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로얄 드림’은 높은 권력이 아니라, 전체를 포괄하는 꿈, 개인적인 꿈이 아니라 거대담론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에 대한 이윤택의 자부심은 강하다. 그는 “뮤지컬을 하면서도 연극처럼 하고, 연극을 뮤지컬처럼 하고… 변증법적으로 잘 만나야 된다. 이게 내 입장이다”고 밝혔다. “연출하면서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차이가 있다면 연극은 관객이 뇌를 더 많이 쓰고, 뮤지컬은 가슴을 여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 20세기 중년 이윤택, 인류구원의 꿈 “나는 신문 칼럼에 ‘영원한 20세기인으로 살겠다’고 밝혔다. 20세기는 그래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문제에만 매달린다. 21세기 세상은 너무나 좀스럽다. 연극도 요즘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자기 일상극만 만든다. 내가 제일 많이 던지는 질문이 ‘뭐가 그리 힘드냐? 너 지금 독립운동하냐?’는 말이다. 지금 세계가 가족 중심, 개인 중심, 일상 중심인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색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으니까 세상이 너무 난삽하다. 사실은 아버님이 갈색 색안경을 끼셨는데, 기분이 참 안 좋았다. 우리 아버님은 눈매가 굉장히 무섭다. 그런데 나도 갈색 안경 쓴 지 10년이 다 됐다.” ○ 판타지男, 환상의 로맨스를 꿈꾸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첫사랑을 찾아가든지 여자랑 연애하다 자살하는 것이다. 방법이 없다. 이 나이에 내가 연애하면 어떻게 될까? ‘꽃을 바치는 시간’이라는 희곡을 썼는데 그게 바로 연애 얘기다. 나이 들어서 우리 세대 남자들이 동창회를 갔다가 첫사랑 얘기를 한다. 이것이 향가 ‘헌화가’와 연결된다.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으러 절벽을 오르잖아? 그 이야기다. 그걸 자살하는 걸로 보여준다. 건축사가 집을 지었는데 기울었다. 지반이 흔들려서 건물이 붕괴되기 전, 남자는 자살하고 여자는 잠옷 바람으로 ‘내 신발 어딨냐? 집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끝난다. 여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남자는 이상으로 가는 거다. 그걸 썼는데 너무 어렵다고… 국립극단에서 못하겠단다.” ○ 사랑은… ‘해후(邂逅)’, 다시 만나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보고 처음 보는데 낯설지 않은 것, 그게 가장 원초적인 사랑이다. 참 이상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여자를 보고 기절한 적이 있다. 머리끝에서 끓어오르면서 아찔해서 그대로 교복을 입은 채 담벼락에 주저앉아 버렸다. 학교도 안 가고… 보통 사람들이 봐선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주저앉은 여자는 쌍둥이였다. 주저앉았다고 소문이 나서 … 그 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언니는 동생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그 사람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봤다. 그게 ‘해후’여서 그런 거다. 처음 만났지만 첫 만남이 아니라 다시 만난 거였다. 다시 만난 이유가 뭔가 또 생각해봤는데, 꿈하고 관련된다. 사람은 각자 의식 속에 이상적인 남자, 여자를 마음속에 꿈꾸고 있다. 그 꿈꾸던 사람을 만나면 다시 만난 거지.”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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