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잃은슬픔메달로바꿀거예요”

입력 2008-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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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사격대표김민지,작년전지훈련중부친별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면 가장 먼저 누구와 통화하고 싶으세요?” 베이징올림픽에 나서는 클레이 사격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겠죠.” 2004아테네올림픽 더블트랩에서 은메달, 트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보나(27·우리은행)가 말문을 열었다. “(이)보나는 동메달, 은메달 땄으니 이제 금메달 딸 차례야.” 사격대표팀 변경수(50) 총감독이 호탕한 너털웃음을 지었다. 베이징의 영광을 예감한 듯 한껏 분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한 편에서 감지되는 어두운 분위기. 김민지(19·한체대)의 큰 눈망울이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울라니까.” 변 감독의 호통소리. 그러나 이내 변 감독도 목이 멨다. 김민지는 중학교 3학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사격을 시작했다. 김대원 씨는 취미로 클레이 사격을 하다가 1998년엔 봉황기 사격대회 스키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부전여전(父傳女傳). 김민지의 재능은 놀라웠다. 총을 잡은 지 1년 만인 2005년 5월, 경호실장기에서 72점(75점 만점) 한국기록을 세웠다. 뒤에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후원이 있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 비디오를 입수해 분석했고, 좋은 총을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다. 아버지의 열성이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11월, 아버지는 폐암으로 김민지 곁을 떠났다. 변경수 감독은 김대원 씨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변 감독은 김대원 씨가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마지막 통화를 했다. “너 대신 꼭 (김)민지를 세계정상에 세우겠노라고 약속 했습니다.” 변 감독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되면 며느리라도 삼겠다고 편히 눈 감으라고 했어요.” 결국 친구도, 딸도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다. 당시 사격대표팀은 태국 전지훈련 중이었다. “침착하고, 과감하게 쏘면 무조건 금메달입니다.” 변 감독의 말에 김민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지는 매일 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임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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