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이병헌“럭비공같은세상,난그걸즐기는놈!”

입력 2008-07-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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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이 날 긴장하게 한다.” 쏙 빠진 볼살, 검게 그을린 얼굴. 오랜만에 만난 이병헌의 얼굴에는 1년 동안 해외에서 세 편의 영화를 강렬한 액션으로 연기한 긴장감, 그리고 귀국한 뒤 그에서 풀려나면서 쌓인 피로가 그대로 묻어났다. “어쩌다보니 액션 배우가 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몸이 두 세 개도 아닌데 늘 조심해야 한다. 다리가 부러지고 인대가 찢어졌다. 여기저기 멍 투성이다.” 중국에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촬영하다가 발목이 부러졌고, 할리우드 영화 ‘G.I.조’를 체코 프라하에서 찍다가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졌다. “암담했다. 이제는 너무 생각 없이 뛰어들어서 부딪힐 나이가 아닌 것을, 확실히 경험했다.” 그런 고통 끝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흥행 호조가 주는 단맛을 보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도 ‘액션영화는 이제 겁나겠다’고 우문을 던졌다. “좋은 작품인데 액션영화라고 해서 하지 않겠느냐?”는 현답이 돌아왔다. 그는 되물었다. “뭘 할 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계획? 대답할 게 없다. 앞으로 내가 뭘할 것인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팬들도 기다릴 뿐이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가 될 줄 누가 알았나? 닌자 영화(‘G.I.조’)에 칼을 차고 등장할지, 갱단두목(‘나는 비와 함께 간다’)이 될지 알았겠나?” 이병헌은 자신이 아무리 갈망한들 얻을 수 없는 게 있다고 했다. “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이 늘 날 긴장하게 한다”는 말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됐다. ○ 뭔가 불안함을 느낀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나. “불안감? 물론 있다.” ○ 무엇이 불안한가. “복합적이다. 내 삶에 대한 것일 수도, 영화 인생에 대한 것일 수도, 아니면 작품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지금 배우로서 맞게 가고 있느냐 늘 자문자답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조금씩 편해진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불안감은 미세하지만 때에 따라 제어가 가능하다.” ○ 톱스타로서, 배우로서 어느 단계에 올라 무엇을 이룬 여유 덕분 아닐까. “아니다. 내 초기작 가운데 ‘지상만가’가 있다. 레드카펫을 밟고 상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그 영화를 찍을 때 내가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될 거란 상상을 했겠나. ‘정말 그렇다면 아마 믿어지지 않으며 마음의 진정도, 호흡도 안 될 것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드카펫 위를 여유 있게 걸으며 ‘내가 많이 거만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즐기고 있는 나를 봤다. 이미 적응해 있는 날 발견한 것이다. 몇 년 전 날 되돌아보며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려 애쓴다.” ○ 이병헌의 행복은 뭔가. 톱스타로서 이병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글쎄, 내가 행복한지를 늘 점검하며 살 수 있다면 남들보다 행복한 것 아닐까. 내가 어떤 위치에서 뭘 갖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다.” ○ 레드카펫을 꿈꾸며 영어 공부를 해왔다는데. “누가 그런 얘길?! 실질적인 영어 공부는 10대 후반에 2년 동안 한 것 뿐이다. 그 때 배운 영어를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기특하다.” ○ 늘 뭔가에 대비하며 사나. “뭘 계획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렇다고 또 대비라는 게 뭐가 있나. 그냥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새로움을 기억하도록 애쓰라고 후배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게 배우의 진정한 재산이니까. 감정 혹은 그것에서 파생되는 것들을 연기로 보여줘야 한다. 결국 살면서 느끼는 것이다.” ○ 지금도 뭘 느끼려 하나. “배우가 작품을 끝내고 논다고 한다. 하지만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다. 뭔가 끊임없이 닥쳐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쉬는 시간 동안.” ○ 연기와 작품 말고 지금의 최대 관심사는 뭔가. “인테리어. 원래 관심이 많다. 공간을 활용한다는 개념이랄까.” 몇 년 전 멋지게 꾸민 자신의 집을 그가 시청자들에게 공개한 기억을 떠올렸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뽑은 원두커피의 진한 향을 음미하던 모습이 ‘참 맛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G.I.조’ 촬영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프라하에서 또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왔다며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 웃음 속에 스크린에서 본 비열하고 악한 모습이 숨어 있으리라고, 그의 말대로, “또 누가 알았겠나”? ○ 공교롭게도 최근 출연작 세 편에선 모두 ‘나쁜 놈이다’. 앞으로 걱정되겠다. “걱정? 천만에.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새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큰 걱정이었다. 악역이다, 아니다의 구분은 중요치 않다.” ○ 캐릭터가 크게 다른가.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선 내면 깊숙이 악마성을 간직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악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의 영혼은 악을 대표하는 섬뜩함 그 자체다. ‘G.I조’에서는 어떤 액션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다.”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창이는 어떤가. “잔혹하고 무섭다. 관객은 즐기기만 한다. 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놈이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런 유치한 놈이다. 하지만 그 얼마나 극도의 불안함이 있겠나. 긴장감과도 숱하게 싸울 거다. 하루하루 불면의 밤을 얼마나 지새웠을 것인가.” 영화 속 캐릭터를, 손짓과 몸짓으로 작지만 강렬하게 표현한 이병헌은 인터뷰 도중 스태프에게 샌드위치를 부탁했다. “배고프면 집중이 안된다”면서. 샌드위치 한 접시를 금세 해치운 그는 이제 하반기에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로 팬들을 만난다. 작품에 대한 “배고픔”을 잊기 위해 그는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마음의 준비”로서 집중하며 살고 있는 듯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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