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균의21C必聽음악실]‘섹시지존’한국의마돈나변천사

입력 2008-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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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요즘 자주 등장한다. 올 해 들어서만 문지은 손담비 엄정화 이효리 서인영 채연 등 섹시코드를 앞세운 가수들이 활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마돈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등장했다. 섹시 컨셉트의 여가수만 나오면 성과에 상관없이 남발되는 수식어다. 하지만 ‘마돈나’는 한국 가요 섹시 아이콘의 계보학에서 두드러진 혁신을 이뤄내야만 떳떳하게 달 수 있는 수식어다. 진정한 ‘한국의 마돈나’를 가려본다. ○ 김추자, 시대적 제약 분위기로 돌파 TV가 매스미디어의 주역으로 부상한 시대에 맞춰 탄생한 한국 가요계 첫 섹시 아이콘. 1969년 데뷔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 ‘거짓말이야’ ‘꽃잎’ 등을 히트시켰다. 소울에 기반을 둔 끈적한 노래 분위기, 몽환적 음색과 제스처, 화려했던 춤 등 섹시함에 대한 시대적 제약을 노출이 아닌 분위기로 돌파한 첫 섹시퀸이다. 딱 붙는 셔츠와 나팔바지, 머플러와 풀어헤친 셔츠 단추 또한 섹시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삶 자체도 섹시했다. 임신설 간첩설 ‘김추자 소주병 난자사건’ 등 가수 활동 낸 각종 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대마초 스캔들 이후 침묵하다가 1980년대 후반 의외의 복귀 공연을 가져 화제를 모은 뒤 다시 사라져버린 신비주의 속에 살고 있다. ○ 김완선, 파격 댄스로 보수시선 도전 ‘댄싱 퀸=섹시스타‘의 공식을 만든 첫 여성 가수.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했고 이후 일찍이 여가수에게선 볼 수 없었던 파워풀한 춤으로 당대의 섹시 스타로 군림했다. 춤 외에도 백치미적 분위기와 외모, 몸매, 눈빛으로 섹시함을 증폭시켰다. 김완선의 섹시미는 민주화에 이은 개방적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기에 활동했던 덕에 이전 여가수들에 비해 좀더 거부감 없이 평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내에 남아 있던 보수적 분위기를 감안해 노출이나 섹시에 대한 당당한 언급 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도기의 섹시퀸이었다. ○ 엄정화, 노출 통한 건강한 섹시미 선보여 섹시함이 자랑스러움임을 당당하게 표출한 첫 여가수. 1993년 데뷔 후 한동안은 ‘눈동자’ ‘하늘만 허락한 사랑’ 등 발라드 풍의 노래로 활동하다 1997년 ‘배반의 장미’를 시작으로 작곡가 주영훈과 손잡고 본격적인 댄스 가수로 변신하면서 섹시 스타로 우뚝 섰다. ‘초대’에서는 분위기로, ‘페스티벌’에서는 노출을 통한 건강한 섹시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섹시함을 내보였다. 패션을 섹시스타의 필수 요소로 만들었고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도발적으로 언급했던 첫 섹시 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엄정화도 섹시함 자체로만 승부하진 못했다. 귀여움을 가미한 ‘큐트 섹시‘로 9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했던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돌파했다. ○ 이효리, 섹시함 그 자체로 승부수 ‘한국의 마돈나’ 계보학을 완성한 여가수. 분위기, 패션, 춤, 도발적 언행 등 섹시퀸의 필수 요소 모두를 갖췄다. 솔로 데뷔 히트곡 ‘10 minutes’를 통해 섹시함으로 여성이 남녀 관계를 주도하고 우위에 설 수 있음을 당당하게 선언한 개척자이다. 뿌리 깊은 보수성의 눈치를 보느라 섹시함에 귀여움이나 순수함 등 다른 요소들을 섞었던 기존의 섹시퀸과 달리 섹시함 그 자체로 승부를 벌인 첫 여가수이기도 하다. 이효리 이후로 가요계는 섹시 여가수 융성기가 열려 수많은 아류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 영 균 스포츠지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6년간 음악·영화에서 열정을 불태운 몽상가. 지금은 ‘킬러 콘텐츠’를 만든다며 매일 밤 담배와 커피를 벗삼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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