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이유있는대결

입력 2008-08-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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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대결이다. 두 사람의 대결을 두고 바둑계 언론들은 곧잘 이렇게 카피를 뽑는다. 이창호와 유창혁. 그래서 ‘이-유’있는 대결. 두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났다. 기록을 보니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밥만 먹었다 하면 만나던 두 사람이 이렇듯 뜸해진 것은 전적으로 유창혁의 탓이다. 그가 정상권에서 멀어지면서부터, 두 사람은 얼굴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한때 유창혁은 이창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스승 조훈현 9단이 전 기전을 싹쓸이하는 ‘전관왕’을 무려 세 차례나 이룩한데 반해 이창호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 물론 스승의 시대에 비해 ‘먹어야 할’ 타이틀이 많기도 했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유창혁의 존재 때문이었다.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 기전의 타이틀을 독식하고도 이창호는 유창혁이 나 홀로 지켰던 왕위전의 성을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창호는 당태종이요, 유창혁은 안시성의 고독한 성주 양만춘이었다. 이창호는 유창혁이 쌓아 올린 최후의 보루를 얻지 못했고, 그 결과는 전관왕의 실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유창혁의 ‘알박기’의 승리였다. <실전> 백4로 붙인 수로는 <해설1> 백1의 슬라이딩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흑4로 막히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세 수만 읽어도 볼 수 있는 수이다. <실전> 흑5로 <해설2> 1처럼 위쪽을 젖힐 수 있지 않을까? 백은 3·4로 둔 뒤 얄밉게도 6으로 뻗는다. 이건 백이 잘 풀린 모양이다. 집이 크다. 백은 <실전> 12로 뛰고 흑은 13으로 좌하귀를 조용히 지켜두었다. 반상은 고요하다. 앞으로도 고요할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기 전까지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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