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김정주“주먹이부서져도싸운다…난복서니까”

입력 2008-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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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야 했다. 복싱선수가 안 아픈 몸으로 링에 오를 수가 있냐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왼 주먹은 말을 듣지 않았다. 갈비뼈를 다쳤던 2004아테네올림픽처럼, 김정주(27·원주시청)은 4강에서 분루를 삼켰다. 하지만 금보다 빛나는 동메달이었다. 한국복싱 사상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은 이승배(37) 대표팀 코치(1992년 동, 1996년 은) 이후 2번째다. 불행의 시작은 10일 열린 웰터급(69kg) 1회전이었다. 장기인 왼손 훅을 상대 머리에 작렬시키는 순간, 김정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경기가 끝나자 왼 주먹이 욱신거렸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왼손 골절 판정을 받았다. 매 경기 오전에 열리는 메디컬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실격. 밤이면 얼음찜질을 한 뒤 깁스를 했고, 아침에 되면 깁스를 풀었다. 샌드백 한번 두들기는 것도 힘들었다.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16강전이 열린 14일 오전.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메디컬테스트를 받았다. 왼 주먹 이상 유무를 확인할 때면 이를 악 물었다. 혹시 상대에게 약점이 노출될까봐 부상 사실도 철저히 숨겼다. 하지만 김정주는 한쪽 날개만으로도 잘 날았다. 왼손은 속임수로만 쓰고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점수를 쌓았다. 2회전 존 잭슨(버진아일랜드)을 10-0으로 눌렀고, 우승후보 드미트리어스 안드라이드(미국)마저 11-9 판정으로 이겼다. 특유의 아웃복싱이 빛을 발했다. 비디오 분석결과를 토대로 주먹이 아닌 머리로 싸웠다. 천인호(49) 감독은 “(김)정주는 한 번 진 상대에게는 절대 지지 않는다”면서 “점수를 세어가며 경기를 펼칠 정도로 두뇌회전이 빠르다”고 했다.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동료들의 부상투혼에 화답하기 위해서였다. 이옥성(27·보은군청)은 갈비뼈 부상의 후유증을 견디며 세계선수권자 워렌(미국)을 제압했지만 16강전에서 패했다. 백종섭은 동메달을 앞둔 8강전에서 기관지파열로 기권했다. 김정주는 “꼭 금메달을 따서 그간의 설움을 날리자고 동료들과 약속했었다”면서 “나 혼자 남았기에 꼭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베이징=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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