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둑은 박정상이 석 집반을 남기며 3전 전승으로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박영훈은 1승 1패. 역시 1승 1패의 이재웅과 한 장 남은 결선행 승선표를 놓고 대결해야 한다. “흑1이 보통이겠지?” 박영훈이 <실전> 흑1을 떼어선 <해설1> 1로 늘어놓았다. 그러자 박정상이 백2를 냉큼 두드린다. “이게 워낙 좋은 자리잖아? 흑을 공격하는 손맛이 쏠쏠하지. 게다가 여차하면 A로 넘어가는 수단도 남아있거든.” 박영훈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그도 <실전> 흑1로 두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묵묵히 반상에 돌을 놓아갔다. 프로들에게 복기는 일상이지만, 곁에서 보고 있자면 신기할 뿐이다. 어쩌면 저 많은 수순을 사진을 찍듯 외울 수 있을까. 상변에서 흑이 손을 뺀 이상 백8까지 백이 두터워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바둑은 두 사람이 두는 게임이다. 한쪽이 모든 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 흑1이 놓인 이상 좌변의 주도권은 흑이 쥐고 있다. 박영훈은 일단 흑9으로 붙여 백의 엷음을 노린다. 백12로 밀어간 수는 좋은 판단. 박정상이 <해설2> 백1로 늘어보이자 박영훈은 흑2로 꼬부렸다. “이 수가 워낙 좋지.” 백이 실전에서 둔 자리이다. 즉 이 곳은 서로 간에 급소가 된다. 하수의 눈에는 이런 곳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평범해 보이면서도 두텁다. 어느 날부터 이런 자리에 눈길이 간다면 바둑이 늘었다는 증거이니 마음껏 기뻐해도 좋다. 두 사람 모두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고수들 간의 복기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다. 물론 드러낼 것은 드러내고 감출 것은 감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