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이거. 이게 승착이었다고.” L이 감탄을 하며 <실전>의 백1을 두들겼다. 한 판의 바둑에는 한 수의 승착과 한 수의 패착이 등장한다. 물론 승착은 이긴 자의 수요, 패착은 진 쪽의 수이다. 한 판의 바둑은 길다. 승자라고 해서 내내 좋은 수만 둘 수는 없다. 그 역시 패자의 패착 못지않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관전필자들은 승자의 대실수를 이렇게 부른다. “졌으면 패착.” 백1에 흑은 2로 이었다. 본래는 <해설1> 흑1로 이어야 한다. “하지만 백4까지 되고나면 흑돌 전체가 위험해진단 말씀이지.” L이 <해설1>을 늘어보였다. 확실히 이건 흑 대마 전체가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것도 안 되는 거지?” A가 <해설2> 흑1로 이었다. 뭔가 될 듯싶지만 백4로 끼우는 수가 기다리고 있다. 흑의 생명줄이 동강이 나고 만다. 결국 <실전> 백3으로 흑의 중앙 요석이 ‘요절’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서는 백승이 유력하다. “홍성지가 절절 매는군.” L이 백3을 놓더니 팔짱을 끼곤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조국수님의 전투 감각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깐. 몸싸움에서 후배들한테 조금도 안 밀리시잖아?” 그 말에 A도 고개를 끄덕끄덕. 올 들어 그 역시 조훈현 9단에게 한 판 진 기억이 있다. 그땐 일부러 난전을 피해 시종 링 사이드를 도는 작전을 썼지만 결국 막판에 싸움에 말려들어 패하고 말았다. 수읽기와 힘의 대결에서라기 보단 투혼의 질에서 밀렸다. 조훈현 9단을 상대로 바둑을 둔다는 것은 이쪽이 가진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조훈현은 여전히 후배들의 높은 벽이다. 그는 이창호와 이세돌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의 외침이 바둑판이란 광야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정상으로 갈 자가 없느니라(훈현복음 14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