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마인드올림픽에등장한황당바둑

입력 2008-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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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이민진 5단이 은메달을 따내면서 한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즈에서 금1, 은2, 동1개로 바둑부문 1위를 달리게 됐습니다. 자랑스러운 금메달은 강동윤 8단이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박정상 9단과 ‘형제대결’을 펼친 끝에 목에 걸어 ‘반상의 국민동생’으로 등극했지요. 지난 3일에 개막된 이 대회는 ‘마인드올림픽’으로도 불립니다. 총 105개의 메달이 걸려 있는데 금메달 수는 체스가 10개로 가장 많고, 다음이 브릿지(9). 바둑(6), 체커(5), 중국장기(5)가 그 뒤를 잇습니다. 바둑에 관한 한 한중일이 세계 최강3국이지요. 하지만 이 대회에는 한중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바둑왕이오’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사이트에서 대회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그만 의자 위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지난 4일 남자개인전 2회전에서 벌어진 실제 바둑판입니다. 한 눈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흑돌이 무려 6선에 놓여 있습니다. 프로의 바둑에서 5선을 둔 경우는 본 적이 있지만(거의 몇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6선은 처음 봅니다. 착수를 하려다 손이 미끄러져 돌을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요. 대국자 이름을 보았더니 박영훈 9단과 체코의 어느 아마추어 기사의 바둑이었습니다. ‘아하! 박영훈 9단이 어차피 이길 바둑, 재미있게나 두어보자고 한 모양이로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상대를 무시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확인해 보니 6선에 둔 쪽은 박영훈이 아닌 체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천하의 박영훈을 상대로 첫 수를 저리 두어놓으니 박영훈 9단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우리의 박영훈은 3선으로 차분히 받아두었습니다. 설마 했더니 이번에는 5선. 박영훈 9단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바둑판에 놓인 돌 세 개만으로도 현장의 모습이 이처럼 훤히 떠오르니 희한한 일입니다. 이 바둑의 결과야 뭐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박영훈을 상대로 저렇게 두 수씩이나 ‘거저’ 버리고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 체코에 한 명쯤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무리겠지요. 남녀 개인전을 마친 이번 대회는 13일부터 단체전에 돌입합니다.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았던 랭킹 1위 이세돌 9단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혹여 이세돌을 상대로 7선에 두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꼭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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