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본드,달콤한본드가아니네

입력 2008-1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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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은 물론 웬만한 미사일이 명중해도 끄덕 없는 자동차. 분명 권총인데 대포보다 강한 특수무기. 수십 명과 싸워 이겨도 얼굴에 상처하나 없고 탱크를 몰다가도 넥타이를 고쳐 매는 센스.모두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됐다. 시대는 달라졌고 본드도 변했다. 이름마저 비슷한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에서 스턴트맨도 마다하고 리얼 액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본드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SF영화에나 어울릴법한 투명 자동차를 타고 얼음궁전에서 미녀들과 뒹굴었다. 당연히 관객들은 현실감 없는 한 물 간 영국 스파이를 외면했다. 2006년 해고된 피어슨 브로스넌 대신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 역대 본드 배우 중 가장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겼다. 잘 생긴 영국신사를 기대했던(영국관객들은 꽃미남 올란도 블룸을 새 본드로 바랬다) 본드의 팬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카지노 로얄’이 공개된 후 관객들은 왜 그가 2000년대 새로운 본드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대역 없이 화끈한 액션연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기파 배우였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퀀텀 오브 솔러스’는 시리즈의 성공적인 재탄생을 보여줬다. 지난 21편의 ‘007’시리즈와 확연히 달라진 새로운 액션시리즈의 탄생.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 더 이상 방탄차는 없다. ‘퀀텀 오브 솔러스’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굽이진 산길에서 벌어지는 추격신이다. 비밀조직원을 납치한 본드가 추격을 뿌리치는 장면. 하지만 놀랍게도 본드의 자동차는 악당들의 총질에 유리창이 부서진다. 가까스로 고개를 숙이고 운전하는 본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장면이다. ‘우리가 아는 ‘본드 카’는 방탄은 물론 미사일까지 달려있었는데….‘ 본드가 영국 정보기관 MI6의 연구소에서 장비책임자 ‘큐‘(Q)로부터 신기한 비밀장비를 건네받고 시작됐던 과거의 007 시리즈,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본드를 지켜주는 건 튼튼한 몸과 최첨단 휴대전화뿐이다. 21번째 시리즈 ‘카지노 로얄’과 속편 격인 22번째 ‘퀀텀 오브 솔러스’는 1962년 제작된 1편 ‘살인번호’ 이전의 과거로 돌아간 프리퀄이다. 과감히 배경이 되는 시대는 지금, 현재로 설정했다. 위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고성능 카메라까지 되는 휴대전화는 현대인의 필수품. 본드 역시 휴대전화로 명령을 받고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첨단기술의 도움은 거기까지다. 적들과 싸우다 깨치고 멍들고 피나는 본드는 ‘본’시리즈의 제이슨 본 부럽지 않은 투사로 변했다. ‘퀀텀 오브 솔러스’의 제작비는 시리즈 사상 최고다.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이상인 2억 2000만 달러에 이른다. 특수효과가 거의 없는 영화가 이렇게 비싼 이유는 하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6개월간 찍은 리얼 액션 때문이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007’의 본드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만큼 인정도 있었다. 하지만 ‘퀀텀 오브 솔러스’의 본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오죽하면 그의 상관인 ‘엠’(M)이 “본드 제발 사람 좀 그만 죽여”라고 소리를 지를 정도다. 실패를 모르던 낭만파였던 과거와 달리 본드는 전편 ‘카지노 로얄’에서 굴욕적인 고문에 배신까지 당했다. 복수심에 잠도 못자는 일급 스파이는 악당을 사로잡으려다 힘들면 과감히 죽여 버린다. 하지만 그래서 더 리얼리티가 돋보인다. # 본드 걸과의 베드신도 없다. 순정파 본드의 인간적인 매력 ‘퀀텀 오브 솔러스’는 22편의 시리즈 중 사실상 처음으로 시도된 속편이다. 지금까지 ‘007’은 개별 에피소드로 독립된 영화였다. 하지만 ‘퀀텀 오브 솔러스’는 ‘카지노 로얄’에 이어진 속편이다. 본드는 ‘카지노 로얄’에서 첫 사랑의 배신과 죽음을 함께 경험했다. 아픔이 깊은 본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역대 시리즈의 어느 본드 걸 못지않게 섹시한 올가 쿠릴렌코가 눈앞에 있지만 본드에게는 임무가 우선이다.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바람기는 하룻밤 품에 안을 여인을 찾지만 마음에 상처가 깊다. 사랑의 상처에 고뇌하는 본드는 무서울 게 없는 슈퍼 히어로에 천하의 카사노바였던 과거 선배들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이경호 기자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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