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여보,난당신없인못살아

입력 2008-11-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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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결혼 후 단 한번도 서로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얼마나 불편할지 전혀 생각도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희 장모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처가에 장인어른 혼자 남게 됐는데, 집사람이 시골 장인어른께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처가는 저희 집과 워낙 멀리 떨어져있는 곳이라, 한번 가면 하룻밤을 자고 오거나 이틀 밤을 자고 와야 합니다. 그게 제 집사람도 마음에 걸렸는지, 떠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갔습니다. 먼저 냉장고에 해물볶음밥, 김치볶음밥, 흰밥까지 종류별로 차곡차곡 담아서, 전자레인지에 바로 돌려서 먹을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현관문에는 메모지에 ‘가스레인지와 전등은 한 번 더 확인하세요’ ‘출근하기 전에 베란다 화분에 물주고 가세요’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떠난 그 다음 날, 그 때부터 저희 집은 엉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7시에 제 휴대전화 모닝콜이 울렸습니다. 제가 5분만 더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깨니까 아침 8시가 훌쩍 넘어버린 겁니다. 깜짝 놀라서 애들 방으로 가봤더니 애들도 그 시간까지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죄 없는 중학생 딸에게 소리를 지르며 “넌 엄마 아빠가 안 깨워주면 못 일어나니? 엄마 아빠 없으면 학교도 못 가?” 하면서 야단을 쳤죠. 딸아이는 입을 삐쭉거리면서 “아빠! 저 어제 새벽 2시까지 공부했어요. 시험공부 하느라 늦게 잤단 말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무슨 죕니까? 제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에 그 날은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어질러진 집은 처음 봤습니다. 방마다 이불은 그대로 나뒹굴고 있고, 뱀 허물 벗듯 벗어놓은 옷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애들은 학원가기 전에 라면을 끓여먹었는지 가스레인지 위에 라면국물이 사방팔방 튀어있었습니다. 집사람이 떠난 지 이틀도 안됐는데 어쩜 그렇게 티가 나던지… 저는 한숨을 푹푹 쉬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 화분!’ 하는 생각이 나는 겁니다. 얼른 베란다로 갔더니, 활짝 피어 있던 보라색 야생화가 힘없이 축 쳐져 있었습니다. 그 중 몇 송이는 떨어져서 화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나왔습니다. 첫째 날을 그렇게 보내고 둘째 날이 됐을 때, 저는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마자 발딱 일어났습니다. 아이들도 잘 챙겨서 학교 보내고, 우리 집 강아지 아침밥까지 챙겨줬습니다. 가스레인지 중간밸브도 아들 말처럼 마이너스로 만들어놓고, 전등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아주 여유롭게 출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퇴근 후 집은 또 엉망이 되어있는 겁니다. 강아지가 아직 읽지도 않은 조간신문을 갈가리 찢어 온 거실에 널어놓고, 제가 아끼는 제 신발까지 물어뜯어서 아주 너덜너덜 걸레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집사람이 겨우 이틀 없었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빈자리가 큰 지…. 사실 집사람이 없으면 잔소리도 안 듣고, 마음이 편할 줄 알았습니다. 밥 먹기 싫으면 라면 먹으면 되고, 그것도 싫으면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되고, 애들도 이제 다 컸으니 자기들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냥 집에 누워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람 없으니까 그 사람 얼굴이 너무 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 집사람, 처가에 오래 있을까요? 빨리 와야 될 텐데…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경기 하남 | 이재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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